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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람이분다네가그립다

20. 그대 가득한 풍경

by 수ㄱi 2021. 8. 25.

 

그대 가득한 풍경

.......................................... 임은숙

어느 하나를 훌쩍 뛰어넘어

원하는 계절로 갈 수 없는 자연의 섭리처럼

원치 않아도 꼭 거쳐야만 하는 삶의 순서일까?

이유 없는 슬픔과 불안을 내 것처럼 받아 안으며

어스름이 내리는 우중충한 거리를 무작정 헤맸다

굵직한 빗방울이 떨어지자

행인들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신호등의 배경이 잿빛이었구나 생각하면서

너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연스레 그려지는 눈과 코 그리고 강인한 턱…

늘 그랬다

너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습관처럼 너를 떠올리곤 했다

새순이 돋는 연초록의 나뭇가지를 보거나

이름 모를 작은 들꽃을 마주할 때

신발에 밟히는 때 이른 낙엽을 보거나

눈보라 속으로 추워 보이는

연인들이 걸음을 재우칠 때

어둠의 창을 두드리는 바람소리에

지어는 난생처음 듣는 잔잔한 연주곡에도

네가 떠올랐다

언제 어디서나 너는 내 안에 있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부인해도

소용없는 사실이었다

놓았다고 하면서도 놓은 것이 없고

잊었다고 하면서도 잊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세월은

모든 것을 희미하게 만들지만

완전히 영으로 되돌리는 재주는

애당초 갖고 있지 않았다

묵직한 빗방울이 어깨를 툭 내리친다

잿빛하늘에 힐끗 눈을 주며

누가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급히 인행도로 내려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