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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詩모음

任恩淑 가을詩 모음

by 수ㄱi 2022. 11. 22.

[任恩淑 가을詩 22수]

 

 

 

가을호수를 닮은 그대

 

                       - 임은숙

 

 

온통 그대한테 가있는 내 마음을

가져올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시월의 호수처럼 깊고 그윽한 그대의 눈동자는

오늘도 나의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이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세차게 밀려와선

산산이 부서지는 그리움 조각, 조각들

채 줍기도 전에

다시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리움, 그리움들

 

가을호수를 닮은 그대, 그대

 

 

 

 

 

가을이야기

 

         - 임은숙

 

 

간신히

손 안에 묻어있던 뜨거운 태양의 미열마저

서서히

물러갈 즈음

거리 곳곳에 제자리를 틀기 시작한

낙엽들을 만났습니다

-네가 왔구나!

반가운 나의 한마디에

피곤한 듯 내뱉는 낙엽의 회색빛음성

-온 것이 아니야, 가는 거란다!

 

서글픔과 외로움이 싯누렇게 몰려옵니다

실망 안고 돌아서는 나의 발목을 부여안고

낙엽이 부서지는 비명을 토해냅니다

-잡아줘, 나를 잡아줘!

 

저만치 길게 드러누운 해그림자 속으로

낯익은 그림자 하나가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가을은 가지 않았다

 

             - 임은숙

 

 

노랗게 타들어가는 그리움에

낙엽의 한숨 엿들으며

너와 나는

그 계절을 이름하여

가을이라 했다

 

그리고

우리의 것이라 했다

색깔들의 잔치로 요란한 그 계절을

우리의 것이라 했다

 

소리 없이 쌓이는

눈송이에

그 모든 것이 하얗게 가려진 순간에도

너와 나는

지독한 몸살을 앓으며

가을을 그리워했다

 

새벽하늘에 걸린 하얀 그리움을

희미하게 빛바래어져가는

슬픈 별꽃의 눈물이라며

 

버릇처럼

가을을 그리워했다

 

 

 

 

 

가을여자

 

           - 임은숙

 

 

예고 없이 다가온

계절 안에서

버릇처럼 시작되는

가슴앓이

 

어쩌면 가을은

그 특유의 향기 속에

쓸쓸함과 서글픔을, 그리고

이름 못할 불안과 아쉬움을 감춘

판도라의 상자인지도

 

빨갛게

타는 가슴

손끝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고독

 

단풍 먼저

내가 물들고

거친 바람 한 자락에

붉은 비명 토해내며

계절 속에 묻힌다

 

 

 

 

 

가을哀想

 

          - 임은숙

 

 

그대의 시간도

나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굳은 약속의 길 위에서

부서지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몸짓으로

어제를 보내고 오늘을 맞습니다

 

가슴에 내리는 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살대 부러진 우산

찬비 속에 흐느적거리는데

젖은 한숨사이

흐르는 어둠 길기만 합니다

 

새가 울어 꽃이 피나

꽃이 피어 새가 우나

그대 있어 내가 울고 웃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대는 숙명이기 때문입니다

 

긴 밤

짧은 노래는 슬퍼

멈추지 않는 침묵의 노래 하나면 족합니다

 

 

 

 

 

가을숲에서 답을 찾다

 

                 - 임은숙

 

 

그 숱한 질문에

미처 답을 못할까봐

이파리 하나하나에 적어서 준다

 

빈손에 받아든

묵직한 마음들을 잊은 건 아닌지

외로운 이에게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마음의 빛을 전해준 적이 있는지

과욕으로 타인에게

아픔을 주지는 않았는지

 

일정한 시간을 사이 두고

질문 하나씩을 던지는 나무와

가을빛에 무거워지는 나

 

수북이 쌓인

낙엽 위로 노을이 짙다

 

 

 

 

 

가을새

 

       - 임은숙

 

 

너의 고운 눈빛에

스치는 계절을 미처 담지 못할까봐

가을이다, 가을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우는

나는 너의 가을새

 

바람이 불면 겨울이 온다고

별이 뜨면 나의 별이라고

 

시린 가슴에

홀로인 노래는 슬픈데

노을이 머물다간 서녘하늘을 배경으로

자정이 지나 새벽이 오기까지

그렇게 울고 또 운다

 

 

 

 

 

가을밤엔 슬픈 시를

 

                    - 임은숙

 

 

타인과 나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평행선을 찾아

밍밍한 시간을 보내고

 

밤하늘을 헤집는 바람에게

더 이상 뜨겁지 않은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다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

애써 외면해도

붉게 패인 상처는

멀리 보이는 별들만큼이나 아름답다

 

보내지 않아도

떠나는 것들

 

가을밤엔

슬픈 시를 쓸 수 있어 행복하다

 

 

 

 

 

가을은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 임은숙

 

 

보이지 않는 것과

낯설게 다가오는 것

 

계절의 길목에

바람이 인다

 

가고 오지 않는 사람

와서 가지 않는 기억

애써 외면해도

버리지 못한 미련

 

놓아주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성

 

꼭 잡으라

어디엔가 맞혀오는 메아리

 

 

 

 

 

가을의 노래

 

         - 임은숙

 

 

가을은

허무한 탄식으로 시작된다

 

도망치 듯 스쳐간

봄과 여름이

그 흔적마저 말끔히 지우려고

여기저기 굵직한 붓질을 한다

 

단풍처럼

눈시울을 붉혀도 괜찮은 계절

 

가을엔

누군들 슬프지 아니하리

 

꽃이 진 자리마다

깊어가는 상처

아픔이어라

슬픔이어라

 

떨어지는 낙엽 한 장

지금은 침묵을 필요로 하는 시간

하고 싶은 말은

가슴 깊이 접어두라 한다

 

 

 

 

 

가을 그림자

 

           - 임은숙

 

 

가을이 오면

그대도 묻어왔었지

 

짙어진 계절 빛에

문득 떠오른 모습 보이지 않아

서운함에 창을 여니

스산한 바람에

낙엽들만 부스스 눈을 뜨네

 

붉은 계절에 앓는 병

어느 사이 완치 되었나

메마른 마음의 뜰에는

더 이상 사무침이 없네

 

가을은 오고

그대는 없고

 

창밖엔

시월이 울고 있네

 

 

 

 

 

가을 숲에서

 

            - 임은숙

 

 

방향을 가늠키 어려워라

사면이 노을빛이다

 

여기저기서

우수수 날 부르는 소리

가을의 숲은

곳곳에 너를 숨기고 있다

 

와버린 기억은

밀어낸다고 가지 않고

외딴 벤치에

어둠이 내린지도 이슥하건만

날 부르는 다정한 음성

그치지 않더라

 

날리는 기억에

설음은 한 가득인데

종내 드러나지 않는 너의 모습은

어느 하늘아래

찬바람 속을 서성일까

 

 

 

 

 

가을無情

 

        - 임은숙

 

 

마른 잎

수두룩이 긁어모아

활활 태워

고운 詩로 날리고 싶은데

 

미처 종이에 옮기지 못한

설익은 詩香

바람 따라 날아 날아가고

 

거리 곳곳에

흩날리는 게으른 詩心들

늦가을 오후해살에 아우성이다

 

벌써

가을은 가는가?

 

어디선가

익숙한 바람소리 나를 부르는데

정녕

가을은 떠난단 말인가?

 

 

 

 

 

가을아침 눈을 뜨며

 

                    - 임은숙

 

 

오색의 꿈길을 달려

멀리도 왔습니다

 

눈 뜨기 전부터

그대가 보입니다

 

단풍잎 위에 이슬처럼

눈부신 그대의 미소

 

햇살이 없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아름다운 아침입니다

 

어제보다

좀 더 가까이서 빛나는 우리이길

 

내일로 가는 길 위에

무한한 행복의 연장선을 긋는

투명한 아침입니다

 

 

 

 

 

가을은 나를 흔들고

 

                     - 임은숙

 

 

화려한 겉모습 뒤에

짙은 적막

터질 것 같은 그리움은

계절 빛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푸른 하늘아래

둥글게 원을 그리는

잠자리의 유유한 날갯짓은

시린 슬픔입니다

 

단풍보다 붉지를 못해

나 그대 눈에 띄지 않는 걸까요?

변변한 날개 한 쌍 없어

그대 내게 오시지 못하는 건가요?

 

소리는 빈가지에 걸어두고

어두운 마음에 내려앉는

바람의 또 다른 이름은 한숨인가요?

 

가을입니다

바람이 찹니다

 

 

 

 

 

가을이여

 

         - 임은숙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정열의 나를 담고 있는

큰 가을이여

 

마음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던

서로의 눈빛이 그토록 뜨겁던

우리의 가을이여

 

소슬바람 속에서도

기쁨을 노래하던

미래를 얘기하던

둘만의 가을이여

 

서녘 창을 물들이는 노을 안고

뜨겁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위대한 가을이여

 

낙엽과 함께

수북이 쌓이는 그리움으로

바람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차디찬 방황의 가을이여

 

 

 

 

 

가을인연

 

            - 임은숙

 

 

가을처럼 익은

인연이고 싶다

 

커피 한 잔의 고독과 외로움을

슬프도록 아름다운 빛깔로 그려내는

가을 닮은 인연이고 싶다

 

오래 헤어졌다 만나도

전혀 서먹치 않는

어제 보고 오늘 다시 보는 것처럼

손잡고 너스레를 떨 수 있는

넉넉하고 편한 인연이고 싶다

 

높아진 하늘만큼

벅찬 푸름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침묵의 언어로

모든 걸 그러안는 인연이고 싶다

 

 

 

 

 

가을의 고독 속엔

 

             - 임은숙

 

 

지척에 두고서도

아파해야 했습니다.

 

언제나 짧기만 한

만남이 아쉬워서일까요?

서글픔 가득 담고 조용히 서있는

저기 저 가을나무

 

사박사박 낙엽 밟는 소리마저

아픔이었습니다.

 

헤어지기 전부터 솟구치는

당신에 대한 그리움일까요?

다홍빛 몸짓으로 난무하는

저기 저 한 잎 또 한 잎의 낙엽

 

옷깃을 여미며

찬바람 속을 거닐어야 했습니다.

 

다시 다가올

기다림이 두려워서일까요?

새벽부터 쉼 없이 토해내는

바람의 짙은 한숨 속엔

계절의 고독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가을, 그리움

 

        - 임은숙

 

 

짙어 가는 가을빛 따라

그리움도 영글어 가는가

두텁게 쌓이는 낙엽들만큼이나

그리운 그대, 보고 싶은 그대

 

까닭 없이 슬퍼지고 쓸쓸해져서

절로 시인이 되는 계절

떨어지는 낙엽 한 잎에도

눈물 한 방울

기러기 한 울음에도

노래 한 구절

 

높아진 하늘만큼 그대도 높아지는가!

멀어진 구름만큼 그대도 멀어지는가!

내 손이 닿지 못해 슬프고 아프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은 이렇게 성숙 하는가 봅니다

 

 

 

 

 

그 가을날

 

         - 임은숙

 

 

그날

바람이 을씨년스럽던 바로

그 가을날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습니다

 

그날

낙엽이 쓸쓸히 나뒹굴던 바로

그 가을날

바람은 내 마음까지 흔들어놓았습니다

 

그날

당신이 두 손 꼭 잡아주고

떠나던 바로

그 가을날

내 마음도 당신 손에 건네주었습니다

 

그날

당신이 아쉬운 듯 등 돌리며

무겁게 발을 옮기던 바로

그 가을날

당신 눈가에서 반짝이는

이슬꽃을 분명 보았습니다

 

 

 

 

 

그 가을의 기억

 

               - 임은숙

 

 

빛을 잃은 이파리

왠지 나를 닮았다

 

적막과 고독

그 사이에서

침묵을 고집케 하는

부산을 떨며 왔다가

슬며시 가버리는 계절

 

너에게서 떨어질 때

귓가를 스치던 바람소리

기억에 생생하다

 

긴 밤의 끝을 잡고

낯선 여명 속으로 나를 던지며

새파랗게 비명을 터뜨리는

여기 내가 있다

 

그리고

떠난 듯 머물러있는 네가 있다

 

 

 

 

 

늦가을서정

 

         - 임은숙

 

 

바람의

오래된 장난 끝이 없다

 

짧은 오후 햇살아래

어수선한 차림의 사람들이

거리에 낙엽처럼 뒹굴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휘청이는 허무 내지는 한숨

 

잡을 수 없는 어제와

놓아야만 하는 현실의 무게

고스란히 계절에 묻혀버리고

 

떠나는 자

보내는 자

모두가 빈손이다

 

 

 

任恩淑: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집 '하늘아,별아', '사랑디스크', '바람이 분다 네가 그립다'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