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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詩모음

任恩淑 감성詩 모음[11] "당신만을 따르겠습니다" 외

by 수ㄱi 2020. 12. 24.

 

 

 

 

당신만을 따르겠습니다

 

                 - 임은숙

 

 

산그늘처럼

깊고 그윽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당신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했던 건

습관처럼 내게 찾아오던

그 아픔의 반복일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을 맞이할 만큼

마음을 비워두지 못한 죄스러움과

당신을 받아들임으로 하여

다시 마주하게 될 아픔이 두려워서였습니다

 

조금씩 다가오는 당신을

두려운 몸짓으로 바라보면서

죄스러움은 쌓여만 가고

두려움은 엷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당신이 자그마한 존재로 자리할 때

한적한 벌판의 이름 모를 들꽃 잎에 맺힌

이슬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가슴 전체가 당신의 빛으로 가득 채워질 무렵엔

무겁게 짓누르던 두려움 따윈 염두에도 없었습니다

 

늦은 밤 길거리에서 귓전을 스치는 바람처럼

당신과 나

피할 수 없는 만남이라고 생각하며

최면에 걸린 환자처럼 무작정 당신만을 따르겠습니다

 

 

 

 

 

 

바람으로 오신 그대

 

            - 임은숙

 

 

바람 부는 날

산책을 나갔습니다

 

나뭇가지에

새 한 마리 서럽게 울고

뉘 집 창으로 새어나오는 기타소리

공중에 매달립니다

 

가만히 떠오르는

얼굴 하나 있습니다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일상인데

만나고 싶은 욕심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긴 겨울 안에

나의 봄은 잠자는데

그대 오늘

바람으로 오셨습니다

 

 

 

 

 

 

특별한 그대

 

       - 임은숙

 

 

느낌이 다릅니다

많은 고독과 외로움이 그림자처럼 달라붙던

회색빛 세월을 거친 나에게

사랑이란 이미 말라버린 풀잎과도 같은 존재였는데

다시, 또 다시

봄을 향한 작은 풀잎의 소망을 지니게 해준 그대

그대는 첫 느낌부터가 다릅니다

무심코 던진 나의 한 마디가 상처 되어

그대의 등을 바라봐야만 하는 시간이 올까봐

그대를 향해 입을 열기까지

수없는 준비과정이 필요합니다

 

짙어가는 단풍처럼

그대의 색깔로 물들 나의 내일을 꿈꿀 수 있어 행복합니다

쌓여가는 그리움만큼

아득한 기다림이어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건 우리의 오늘이니까

 

 

 

 

 

 

눈 오는 밤에

 

         - 임은숙

 

 

오렌지 빛 가로등 밑으로

반짝 반짝이며 내려오는

송이송이 눈꽃이

동화 속 같이 아름다운 시간

 

꿈속처럼 전해오는 그대 목소리에

짙게 묻어나는 그리움이

내 속에 사랑을 쌓고 있습니다

행복을 쌓고 있습니다

 

손바닥 위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

눈꽃처럼

우리 사이의 모든 장애는

타오르는 사랑으로 녹아버릴 것이라고

그대는 말합니다

 

조용히, 조용히

사랑이 쌓이고 있습니다

행복이 쌓이고 있습니다

저만치 희망이 보입니다

 

 

 

 

 

 

겨울밤을 걷습니다

 

            - 임은숙

 

 

꽃 피는 계절도 아닌데

향기 가득한 밤입니다

 

네온사인불빛이 오히려 분위기를 흐리는

온통 하얀 세상이

나의 것이었다가 우리의 것이었다가

다시 모두의 것이 됩니다

 

하나 둘씩 빈가지에 피어나는

하얀 꽃이며

소리 없이 귓가에 머무는

하얀 음표들

 

그대의 눈빛 같은

그대의 손길 같은

그리움이 하얗게 날립니다

 

고대하던 봄이

오지 않아도 될 성싶은 이 밤엔

맑은 시를 써야겠습니다

밝은 시를 써야겠습니다

푸른 시를 써야겠습니다

마음의 봄을 노래해야겠습니다

 

 

 

 

 

 

마음 하나 그대에게 보내고

 

                  - 임은숙

 

 

보내고 또 보내도

남아있는 그리움입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이

마음으로 사랑을 전하는 일이

이토록 큰 설렘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햇살이 좋아서

바람이 맑아서

마음 하나 그대에게 보내고

 

작은 새소리에

나뭇잎이 출렁인다고

마음 하나 그대에게 보내고

 

먼 새벽하늘에

별 하나가 졸고 있다고

마음 하나 그대에게 보내고

 

타인에겐 하나밖에 없는 마음이

나에겐 數도 없이 많아서

 

보내고 돌아서면

또 보내야만 하는

물같이 그대에게 흐르는 내 마음입니다

 

 

 

 

 

 

내안의 그대

 

         - 임은숙

 

 

동전의 앞뒷면처럼

서로 마주보진 못하지만

마음의 등을 맞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행복이라 느끼며 걸어온 길이

계절을 반복하더니

다시 푸른 계절의 한 복판에

그대와 나를 세워놓았습니다

 

마주하고 있지 않아도

중얼중얼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들리지 않는 음성에도

그럼요, 하면서 미소를 짓습니다

 

봄 한철 피는 꽃도

내안에서는 사계절 지지 않으며

하얀 겨울에도

내 마음엔 봄빛이 찰랑이고 있습니다

 

서로의 마음 하나에 기대어 가는

믿음의 길 위에서

내안에 머무는 그대만으로 충분합니다

 

 

 

 

 

 

내일이 있잖아

 

        - 임은숙

 

 

간간이 내리는 빗속으로

조용히 잦아들고 싶습니다

지나간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잠시 멈춰 서서 뒤돌아본

그대와 나의 길엔

반짝이는 아쉬움이 통통 튕기고 있습니다

 

좀 더 아름다울 수 있었는데

좀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것들이

먼 하늘 끝 편으로 내 눈길을 당깁니다

 

언제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따스한 미소로 반겨주는 얼굴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잖아

우리에겐 꿈이 있잖아

비 온 뒤에 하늘은 더욱 푸르잖아

 

속삭이듯 들려오는 목소리가

내 얼굴에 미소를 피웁니다

 

 

 

 

 

 

관심 밖의 사랑

 

           - 임은숙

 

 

마음에 드는 화분 하나를 사다가

곱게 내 이름을 적어 넣었습니다

 

조그마한 얼굴을 내밀며

새파랗게 돋아나는 여린 잎이

그처럼 신기하고 가슴 벅찰 줄 몰랐습니다

 

강한 햇살을 막아주고

시간 맞춰 물을 주며

그 향기마저도 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내 이름을 달고 있는 나의 분신

내 것이라는 自滿이

서서히 내 안에 자리를 틀고 앉아

그저 곁에 놓아두기만 해도

절로 알아서 성장할거라는 착각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노랗게 시들어 축 처진 이파리가

아프게 내 마음을 쥐었다 놓았습니다

여전히 내 이름표를 달고

빛을 잃은 그 모습이 낯설었습니다

 

눈빛 좀 주시지 그랬어요

손길 좀 주시지 그랬어요

미소 좀 보내시지 그랬어요

 

내 이름표를 달고서

빛을 잃은 화분이

바라보는 나를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봅니다

 

              - 임은숙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대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조그맣게 멀어지는 나를 봅니다

우산을 접 듯 그대를 접습니다

 

그대 큰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하늘이 푸르게 펼쳐져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곳을 날고 있는 나를 봅니다

 

 


임은숙(任恩淑) 시인 :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집 "하늘아,별아", "사랑디스크"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