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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詩모음

任恩淑 봄시 모음(2)

by 수ㄱi 2023. 2. 26.

[任恩淑 봄시 모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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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외

 


초대

          - 임은숙


햇살이 좋아서
바람이 좋아서
무작정 집을 나섰습니다

햇살아래 바람을 마주하고
어디로 발길을 옮길지 고민합니다
괜히 나왔다고 후회하면서
애꿎은 신발만 흘겨봅니다

햇살이 참 좋습니다
바람도 참 좋습니다
함께 걸을까요?
손짓하고픈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햇살이 참 좋은데
바람도 참 좋은데
차 한 잔 할까요?
나를 불러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보이는 건 햇살뿐인데
어딘가에 바람처럼 숨은 그대
우리 함께 걸을까요?





봄비

     - 임은숙


두근두근
설렘입니다

찰랑찰랑
환희입니다

넘실넘실
기쁨입니다

새벽잠을 깨운 빗방울들의 수군거림이
온통 당신 얘기입니다

촉촉한 그리움이
톡 떨어지고
다시 톡 떨어집니다





3월

      - 임은숙


눈이 부시어
눈을 감아야 한다

꽃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어디서 오는 걸까
코끝에 닿는 이 향기는

생각이 흩어지고
철저히도 비워진 내 속엔
온통 너뿐이다

담벼락아래
모여 앉은 햇볕에
반짝반짝 설렘이 묻어나는 봄날이다





봄빛에 취해

            - 임은숙


내가 걷는 숲에만
봄이 온 건 아닐 터

나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어딘가에도 이맘때면 봄풀이 무성할거다

바람이 스치는 자리마다
거짓말처럼 펼쳐지는 초록물결
볕이 스미는 자리마다
꿈처럼 일어서는 희망, 희망들

바람의 손을 잡고
눈부신 햇살로 너에게 닿아
삭막한 너의 마음 숲에
냇물 되어 흐르면
새소리 정다운 우리의 낙원에는
봄빛이 무성하겠지





가슴이 뜁니다

              - 임은숙


평범한 말 한 마디도
큰 기쁨으로 내게 전해졌던
다정한 얼굴을 떠올리며
초록의 창을 활짝 엽니다

애써 모아두었던 미움이
삽시에 라일락향기에 묻혀버립니다

어디까지가 추억이고
어디서부터 보고픔인지

긴 세월의 끈을 잡고
결코 놓은 적이 없는 그대입니다

부풀어 오른 보랏빛 그리움이
향기로운 음표가 되어
내 마음을 두드리는 봄날
문득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처음 그날처럼
가슴이 뜁니다
세차게 가슴이 뜁니다





무죄

          - 임은숙


꽃에 취한
키 큰 나무 정수리에
달이 턱을 괴고

길 잃은 바람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고요한 듯
술렁이는 사월의 밤

나무가 꽃을 원했는지
꽃이 나무를 불렀는지
나무숲이
통째로 흔들린다

달빛에도 길을 찾지 못한
눈 먼 바람의 격한 숨소리 요란타

봄이기에 가능한
모든 흔들림은 무죄다

이제 꽃은 가라
향기만 두고 꽃은 가라





기쁜 동행

          - 임은숙


봄 한철 피는
꽃들은 욕심이 없다

진달래
개나리
민들레
제비꽃...

모양새도 다르고
색깔 또한 각각이지만
하나의 숲에
하나의 계절에 피는 것만으로도 좋다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저마다의 향기로
숲을 흔든다, 계절을 장식한다

영원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너와 내가
우리라는 이름 안에 꽃으로 피어
기쁜 동행의 길에서
서로의 향기로 계절을 물들인다





다시 봄이다

               - 임은숙


혹여
네가 따라오지 못할까봐
걸음을 늦추기도 하고
때로는
너를 따라잡지 못할까봐
걸음을 재우치기도 하며
매일 낯선 설렘으로 동행하는
사랑의 길에
다시 봄이다

눈부신 햇살아래
바람 사이
향기로 존재를 알리는
눈을 감아도 보이는 풀꽃이 너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믿음으로 빛을 주는
한 사람이 내게 있어
더욱 푸른 봄이다





봄이면 바람둥이가 됩니다

                                 - 임은숙


개나리 노란 미소에
발목 잡혀 어쩔 줄 모르다
이내 연분홍 벚꽃을 곁눈질하며
진달래 고운 자태에 침 흘린다

하늘 땅 천지
온통
향기, 향기다

여기저기 킁킁대다
종내는 짙은 라이라크 향기에 빠져든다

바람의 소맷자락 부여잡은
깃털 같은 마음과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걸탐스런 눈빛

모두를 내 안에 가두고 싶은
고스란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분출구를 찾는 바람둥이 욕구

부르지 마오
꽃이 질까
임이 떠날까 두려우니
그대 나를 부르지 마오





봄의 창가에서

             - 임은숙


문득 말을 걸어오는
바람이 낯설지 않다

봄을 마주한 창 너머로
아련히 떠오르는
지난겨울과 가을
한없이 뜨거웠던 우리의 여름

내게 등을 돌렸던 너와
그런 너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나를 본다

순간의 선택
순간의 행복 뒤에
거짓말처럼 커져버린 미움과 분노
신록의 설렘으로 되돌아오고
꽃잎 사이 불어오는 바람에게서
용서와 이해의 의미를 배운다

피고 지는 꽃들처럼
언제라도 다시
향기로 다가설 수 있는 우리여서 좋다





꽃잎이 지고 있습니다

                            - 임은숙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오렌지 빛 노을이
슬프도록 아름답습니다

긴 그림자 하나 품은
오월의 숲길이
텅 빈 듯 가득 차있습니다

사랑도
꽃처럼 피었다 지는 것임을
미움도
때가 되면 꽃잎처럼 흩날리는 것임을

그대
다시 꽃처럼 피었는데
길 잃은 내 마음은
향기조차 느낄 수 없습니다

어깨 위에
수없이 내려앉는 꽃잎이
간절한 그대 부름인 줄 알면서
이토록 쉬이 외면하는 지독한 무심함이
낯설지만 퍽이나 자연스럽습니다

가장 찬란했던 내 생의 순간순간이
시간이 파놓은 세월구덩이에
꽃잎처럼 쌓이고 있습니다





그대가 아니라도

                      - 임은숙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봄바람이 그토록 좋았던 건
그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름 모를 새소리
음악처럼 들리고
꽃잎 안고 흐르는 강물이
그토록 눈부신 것도
그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대가 아니라도
봄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을

노래하기 위해 태어난 새와
얼음 밑에서도 흘러야만 하는 강
그대로가 운명인 것을

예고 없이 왔다가
몇 방울의 눈물을 기어코 거두어가는
붉은 계절의 쓸쓸함도
그대와는 무관한 자연의 섭리인 것을

굳이 그대가 아니라도
세상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을





꽃샘바람

          - 임은숙


잊지 않고 찾아드는
고즈넉한 저녁처럼
흐른 세월만큼
익어서 찾아오는 기억이 있다

멀어져간 아쉬움 사이로
얼핏 스치는 그리움 하나

봄이 오고 꽃은 피는데
마음엔 바람이 인다

선뜻 입술을 대지 못하는
커피 한 잔이
지독한 그리움이라는 걸
나직이 불러오는 이름 하나가
되돌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걸

저기 넘치는 햇살아래
꽃처럼 피고 싶은데
농익은 기억 하나
통째로 봄을 흔든다





이 봄에는

          - 임은숙


햇살이고 싶다
소녀의 반짝이는 이마에
오뚝한 콧등에 곱게 내려앉는
맑은 햇살이고 싶다

바람이고 싶다
중년여인의 결 좋은 머리칼을 곱게 빗질하며
그녀의 귓가에 음악처럼 머무는
부드러운 봄바람이고 싶다

들꽃이고 싶다
외로운 이의 핏기 없는 얼굴에
소박한 향기로 미소를 그려주는
작은 들꽃이고 싶다

초록의 이름 앞에선
아직도 출렁이는 설렘을 감출 수 없어
이 봄에는
햇살이고 싶다
바람이고 싶다
들꽃이고 싶다





누구나 꽃이다

                - 임은숙


누군가의 가슴에
나도 한 송이 꽃으로 필 수 있을까?

희망을 주어라
봄이 내게 말했다

자유를 주어라
바람이 내게 말했다

용기를 주어라
출렁이며 강이 내게 말했다

끝없이 인내하라
바스락거리며 마른 잎이 내게 말했다

내 마음에 한 송이 꽃이 필 때
누군가의 가슴은
텅 비어 바람소리뿐인 것을 알겠다





꽃의 완성

          - 임은숙


꽃의 완성은
피는 것이 아니라
本然의 향기를 남기는 것이다

어떤 나무에
무슨 이름으로 피건
가장 고운 빛깔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뿌릴 수 있는
適時에 필 일이다

내일 피어도 될 만큼
인생 길지 않다

머뭇거리지 말아
눈치 보지 말아
보란 듯이 찬란하게
이제
꽃잎을 터뜨려라





누군가의 꽃

            - 임은숙


꽃의 이름은 누가 달아주었고
꽃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내가 꽃이라면
이름은 무엇이며 꽃말은 무엇일까

향기로 이름을 짓는다면
어떤 향기를 지녔으며
색깔로 꽃말을 만든다면
어떤 색의 꽃일까

누군가의 가슴에
한 송이 꽃으로 피고 싶은 나는
고귀한 목련일까
순박한 들꽃일까

누군가에게
향기로 다가서고 싶은
나의 이름은 무엇이며 꽃말은 무엇일까





꽃처럼 지고 싶다

            - 임은숙


만약
떠날 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춘하추동 사계절 중에 봄을,
봄 중에도 삼사월이 아닌
오월쯤이면 좋겠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꽃처럼 피고 꽃처럼 지고 싶다

새벽이슬의
눈물 한 방울이면 충분하다
다정한 바람의 손길에
졸린 듯 눈을 감는
향기를 남기고 떠나는
봄꽃이고 싶다



任恩淑: 연변작가협회 리사
시집 “하늘아,별아”(2016), “사랑디스크”(2017), “바람이 분다 네가 그립다”(2021)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