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떨림, 그것은 사랑입니다
- 임은숙
바람이 찹니다
한없이 작아지는 내 마음
한 마리 작은 새가 되고 싶습니다
날고 날다가
그리운 그대 마음에 내려
그대 생각을 헝클어놓는 개구쟁이이고 싶습니다
팽그르르 추락하는
예쁜 나뭇잎에
오색의 그리움을 그리고픈 아침입니다
가을호수를 닮은 그대
- 임은숙
온통 그대한테 가있는 내 마음을
가져올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시월의 호수처럼 깊고 그윽한 그대의 눈동자는
오늘도 나의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이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세차게 밀려와선
산산이 부서지는 그리움 조각, 조각들
채 줍기도 전에
다시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리움, 그리움들
가을호수를 닮은 그대, 그대
꿈새
- 임은숙
꿈으로 와서
이슬로 사라지는
밤마다 오는
하얀 꿈새
아직은
희미한 윤곽만 드러낸
붉은 계절에
함께 물들고 싶어
이 밤도
여린 날개 파닥이며
먼 곳에서 날아와 붉게 속삭인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 여름밤의 사연
빗물 같은 사랑얘기
붉게 붉게 속삭인다
기억을 담는 시간
- 임은숙
짙어가는 계절 빛에
뚝뚝
낙엽이 지는 소리
늘 이맘 때
마음의 숲은 절정이다
싯누런 풀잎 사이사이
세월 앞에 녹슬지 않는 그리움을
기억이라고 중얼거리며
바람의 속성을 떠올린다
더 이상
사랑 아닌 감정
왕복의 자유를 지닌
바람을 부러워하며
뛰어넘지 못할
인생 편도의 설음에
마음은
때 이른 겨울을 걷는다
가을이야기
- 임은숙
간신히
손 안에 묻어있던 뜨거운 태양의 미열마저
서서히
물러갈 즈음
거리 곳곳에 제자리를 틀기 시작한
낙엽들을 만났습니다
-네가 왔구나!
반가운 나의 한마디에
피곤한 듯 내뱉는 낙엽의 회색빛음성
-온 것이 아니야, 가는 거란다!
서글픔과 외로움이 싯누렇게 몰려옵니다
실망 안고 돌아서는 나의 발목을 부여안고
낙엽이 부서지는 비명을 토해냅니다
-잡아줘, 나를 잡아줘!
저만치 길게 드러누운 해그림자 속으로
낯익은 그림자 하나가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낙엽 속에 그리움 묻어놓고
- 임은숙
뜨거운 계절의 낭만이
처량한 나목의 쓸쓸함으로 대체되고
텅 빈 들녘을 지나 차가운 플래트홈에 들어서는
겨울행 기차의 기적소리
한 줌 낙엽 속에 묻힌다
시리도록 슬픈 가을하늘에
못 다한 내 그리움을 메아리로 남기며
이제 가을은 떠나고 있다
무수한 추억들을
미처 비우지 못한 마음 곳곳에 던져놓고
놓고 싶지 않은 아쉬움을
서성이는 바람 한 자락에 매달고
그리움을 말하기엔
이 가을이 너무나 짧고
미움을 하소연하기엔
다가온 겨울이 너무나도 차거웠다
지는 꽃도 향기가 있다
- 임은숙
가을들녘을
걸어본 적이 있습니까
화사한 옛 모습
가는 계절에 앗기고
암울한 눈빛, 처연한 몸짓으로
지난날을 하소연하는
마른 꽃의 흐느낌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잡힐 듯 말듯
스치는 얼굴 하나
이어지는 가슴앓이 슬픕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안에
나를 가두고
내려앉는 어둠속에
꽃처럼 잠깁니다
나를 불러 손짓하던 그대 향기
사뭇 정다운데
어디에도 없는 그대 모습은
찬바람 되어 빈 가슴을 두드립니다
떠나는 것들에 안녕이라고
- 임은숙
비 내리는 오후
창가에 머무는 바람의 노래
아직은 이른 계절냄새에
낙엽 먼저
내가 추락하고 싶은 충동
아찔한 현기증
잎이 지면 그리움도 가는 걸까?
노란 상념에
식어버린 차
붉은 노을 한 자락에
실어보는
때 이른 감성
머물 수 없어 흐르는 구름
잠재울 수 없어 솟구치는 욕망
잡을 수 없어 슬픈 계절
그 속으로
시간이 간다
내려놓기
- 임은숙
창밖
수북이 쌓이는 낙엽사이를
바람처럼 휘젓고 다니는
숙명 같은 저 기억을 어찌하리
종내는 놓을 수가 없어
노을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눈물 한 방울로 어둠속에 스며드는
아직까지도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한
내안의 나
그리움 한줌
낙엽처럼 놓아두고 가는
찬바람아
소리 없이
잎사귀를 털어내는
가을나무의 비장함을 너는 아는가?
버려야 할 것에
높은 울타리를 치며
이 가을
나는 정녕 무엇을 내려놓았는가?
가을은 가지 않았다
- 임은숙
노랗게 타들어가는 그리움에
낙엽의 한숨 엿들으며
너와 나는
그 계절을 이름하여
가을이라 했다
그리고
우리의 것이라 했다
색깔들의 잔치로 요란한 그 계절을
우리의 것이라 했다
소리 없이 쌓이는
눈송이에
그 모든 것이 하얗게 가려진 순간에도
너와 나는
지독한 몸살을 앓으며
가을을 그리워했다
새벽하늘에 걸린 하얀 그리움을
희미하게 빛바래어져가는
슬픈 별꽃의 눈물이라며
버릇처럼
가을을 그리워했다
임은숙(任恩淑) 시인 :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집 “하늘아,별아” “사랑디스크”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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