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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詩모음

任恩淑 감성詩 모음[7] "기억의 숲에 바람이 일면" 외

by 수ㄱi 2020. 12. 22.

 

 

 

기억의 숲에 바람이 일면

 

                - 임은숙

 

 

세상은 우리를

만나게 하고 아프게도 하지만

그 안에서 너와 나는

지울 수 없는 기억의 끈을 잡고

서로에게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익숙한 산책길에

어느 날 문득 깔렸던 낯선 느낌은

아쉬움이라는 이름으로

가슴 깊이에 심어졌다

 

그 씁쓸한 허허로움은

너의 부재가 가져다준 어둠 때문이었을까?

 

다시

하나의 작은 그림자 되어

투명한 몸짓으로

형체 없이 흔들릴 나를 향해

저만치 바람이 차겁게 미소를 짓는다

 

 

 

 

 

 

모든 것이 엉망이겠지

 

                - 임은숙

 

 

잔혹하리만치 슬픈

하루하루가

비껴가고 다시 다가온다

 

바람이 사뭇 차다

가을인가보다

 

맑은 하늘을 쳐다보며

어둠을 떠올린다

 

너를 바라보며

네가 없는 나의 일상을 그려본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겠지

지울 수 없는 네 모습 때문에 한숨이 꼬리를 물겠지

지난 사연 속을 서성이며 몰려오는 서글픔에 울먹이겠지

견딜 수 없는 보고픔을 잠시라도 잊으려고 술을 찾겠지

알콜의 힘을 빌어 바람 찬 거리를 누비며 통곡을 하겠지

그러다가 힘없이 언 땅에 무너지겠지

뒤척이며 잠 못 이룰 밤이 두려워지겠지

행여 꿈속에라도 만나고 싶어 다시 술 한 잔에 잠을 청해보겠지

그리고 네 생각으로 시작할 아침이 두려워지겠지

 

모든 것이 엉망이겠지

그저 그렇게 살아지겠지

 

 

 

 

 

 

숨은 그림 찾기

 

            - 임은숙

 

 

잊음으로 남아있는 것들을

조용히 불러봅니다

 

입꼬리를 치켜 올리던 그대의 미소와

추운 날 내 팔뚝에 하얗게 돋던 솜털과

해질녘 노을 속에 길게 그려졌던 그림자와

후줄근한 그대 뒷모습을

 

늘 걷던 길을 놔두고

낯선 산길에 들어선 듯한 생소함으로

그날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놀랍게 발견합니다

 

그대의 미소 뒤에 숨어있던 작은 한숨과

내 어깨에 걸쳐졌던 두터운 외투와

노을 속으로 멀어지던 한 줄기 외로움과

간절히 하고 싶은 말은 마음에 남기는 것임을

 

어쩌면 잊는다는 것은

기억속의 숨은 그림을 찾기 위한

반복되는 슬픔

 

꽃잎이 떨어뜨리는 옛 기억들을

하나둘 받아 안으며

익숙한 계절 안에 낯선 이름으로 자리한

바람의 아우성을 음악인양 귀에 담습니다

 

 

 

 

 

 

기억의 간이역에서

 

              - 임은숙

 

 

새벽그림자

후줄근히 젖어 흐르는 시간

 

잠자는 바람 앞에

휘청대는 작은 빛

하나

 

그리고

귀가에 머무는 긴 한숨

 

한 사람을 망각 속에 묻는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추억 한 줌 가슴깊이 묻어둔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아직 남아있는 미련을 뒤로 한 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를 닮은 너와

너를 닮은 내가

하얀 시간 위에 서있다

 

그렇게

밤이 가고

계절이 가고

새들이 흔들어 깨운

나의 새벽이

저만치 시린 몸 사린다

 

 

 

 

 

 

친구 같은, 애인 같은

 

              - 임은숙

 

 

아름답지만

좀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지만

그러면 그 어여쁨이 깨어질까

저어되어

감히 다가서지 못합니다

 

그립고 보고 싶지만

그러면 나 전부의 무게가

그대의 부담으로 될까 두려워서

눈을 감아버립니다

 

세상에 흔치 않는 만남이기에

인연을 더욱더

소중히 다루자던 그대

친구 같은, 애인 같은,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되려는

그대의 바람을

따르기로 하겠습니다

 

언젠가는 헤어지는

그날이 오더라도

지금 서로가 만들고 있는

예쁜 추억으로

그 추억 하나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라고 믿기에

 

 

 

 

 

 

그대 바라기

 

          - 임은숙

 

 

여명, 그 고요함에

너의 이름을 새긴다

 

새벽하늘에 낙인된

이름 석 자

 

파르르 떨리는

외줄기 그리움

 

어둠으로 흘러오는

발자국소리 귀에 익다

 

너를

놓지 못하였던 나의 밤이

타는 목마름으로

또 하나의 새벽을 마주하고

 

오직 하나의 이름으로 시작될

너를 향한 나의 24시

바람 앞에 문을 연다

 

 

 

 

 

 

그림자의 길

 

         - 임은숙

 

 

어제와 같은 하루를 만지작거리다

서녘의 쓸쓸함을 마주한다

 

해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끼는 것은

한 줄기 비를 예고함이고

내 마음에 짙은 어둠이 깔리는 것은

누군가 사무치게 그립기 때문

 

그대 향기일가

바람소리에 뒤섞인 촉촉한 냄새

 

잡힐 듯 말 듯

한 가닥의 젖은 상념

 

허공에 내밀었던

손바닥 위로

아직은 서툰 몸짓의 빗방울이

내려앉는 소리 앙증맞다

 

스치는 모든 것을 바람이라 한다면

나를 감싸고도는

그대는 무엇인가

 

슬픔의 간이역에

어두운 그림자 길게 뉘이며

오늘도 기다림이 있어 행복하다고

어제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천연(天緣)

 

        - 임은숙

 

 

우리의 만남을 우연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필연이었고

천연이었습니다

 

어느 날 길 가다가

문득 마주친 사이가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그곳에

둘이 똑같이 나타났던 겁니다

 

옷깃을 스치고 지나버린

정도가 아닌

서로에게 엷은 웃음 한 번 선물한

정도가 아닌

만나서부터 든든한 끈으로

이어진 우리였습니다

 

하기에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제쳐놓고

그대 하나에게

매달리기로 작심한 저였습니다

 

저한테서 이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소중한 인연이기에

그대에게 있어서 저도

가슴 전체를 메우는

그러한 존재로 남고 싶었습니다

 

필요 이상의 구속이

그대를 힘들게 할 줄 알면서도

그대의 일거일동에

눈을 밝혔던 바보입니다

지친 몸으로 돌아서는

그대의 등 뒤에는

진한 괴로움이 묻어있습니다

 

조금씩 멀어져가는 그대

조금씩 아픔이 더해지는 이 바보...

 

아직도 우리에게

필연적 천연이 존재한다면...

 

 

 

 

 

 

저 강을 건너고 싶다

 

             - 임은숙

 

 

그대 내 곁에 있던 순간의

아름다움은

쌓여가는 세월 속 먼 기억으로 빛바래져가고

 

그대 빈자리의 쓸쓸함이

물이 되어 내 마음에 흐를 때

그대 또한 나로 하여

아픔의 시간을 인내할까

 

그대와 나 사이 가로막은

 

오늘은

저 강을

건너고 싶다

 

 

 

 

 

너의 커피 한 잔에서 김이 되어 떠나리

 

                  - 임은숙

 

 

잿빛하늘 저 끝에 꽂힌 눈길을

당겨올 수가 없다

 

하얀 안개꽃같이 피어오르는 슬픔이

눈가에 그들먹이 고이면

버릇처럼 허공에 두 팔을 뻗어보지만

더더욱 움츠러드는 마음은

아마 너 없는 세상이 아직은 두려운가보다

 

늘 그 자리에 태양의 모습으로 자리했던 너

그리고

해바라기처럼 노랗게 너를 향했던 나

행복이었던 것 같다

 

닿지 않는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고

닿지 않는 손길로 서로를 감싸며

밝음보다는 어둠이 많았던 그 시간들에

우리는 서로의 단 하나였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추억으로 돌려야 할 때

 

식어버린 커피 잔과

코끝에서 맴도는 희미한 모카향이 낯설다

 

아무런 예고 없이 먹구름이 시야를 가르며

이제 이별 같은 비를 퍼부으려나보다

 

 


임은숙(任恩淑) 시인 :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집 “하늘아,별아” “사랑디스크”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