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인생
- 임은숙
오월 초순이지만
입하立夏가 지났으니
창을 적시는 촉촉한 저 비
봄비 아닌, 분명 여름비일 것입니다
가슴 뛰는 설렘에
잔뜩 부푼 봄비도 좋지만
이왕이면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여름 소나기에 푹 젖고 싶습니다
천천히 마르고
다 마르고서도 여린 피부에 아프게 닿는
젖었던 옷의 촉감 같은
쓰린 기억이
가끔은 필요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가늠할 수 없는 비안개 사이를
차겁게 방황하던 뜨거운 가슴이
내게도 있었음을
서녘의 노을을 마주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허연 머리칼을 날리는
낯설지 않은 모습을 떠올립니다
소나기 같은
찰나의 인생입니다
한 번 뿐인 그 순간에 올인하여
반짝 빛나고 스러지는
참인생이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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