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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나간 詩와 글221

[시] 봄이면 바람둥이가 됩니다 봄이면 바람둥이가 됩니다 - 임은숙 개나리 노란 미소에 발목 잡혀 어쩔 줄 모르다 이내 연분홍 벚꽃을 곁눈질하며 진달래 고운 자태에 침 흘린다 하늘 땅 천지 온통 향기, 향기다 여기저기 킁킁대다 종내는 짙은 라이라크 향기에 빠져든다 바람의 소맷자락 부여잡은 깃털 같은 마음과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걸탐스런 눈빛 모두를 내 안에 가두고 싶은 고스란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분출구를 찾는 바람둥이 욕구 부르지 마오 꽃이 질까 임이 떠날까 두려우니 그대 나를 부르지 마오 2024. 1. 1.
[수필] 최고의 음악 최고의 음악 ​ - 임은숙 ​ ​ ​ “어정칠월”이라는 말이 있다. 어정어정하는 사이에 칠월이 후딱 가버린다는 뜻이다. 어감도 재미있고 리듬감도 느껴지는 이 말을 우리 인생에 적용해도 참 멋지지 않을가싶다. 찌는듯한 삼복더위 속에서도 용케 잎을 키우는 나무의 그림자가 8월에 들어서며 여유롭게 그 폭을 넓히고 있다. ​ 8월의 한낮엔 졸음의 유혹을 물리치기 힘들다. 깜빡 잠들었다가 사각사각하는 귀맛 좋은 소리에 억지스레 눈을 뜨니 저만치 컴퓨터를 마주하고 앉은 딸애의 뒷모습이 보인다. 짧은 머리에 반나마 드러난 귀염성스러운 귀불 아래로 한쪽 볼이 실룩이는 것이 보이는 것과 동시에 내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덥고 짜증난 일상에 모처럼 즐거운 시간이다. ​ 노랫말이 아름다워 귀가 솔깃해지는 그 어떤 발.. 2023. 12. 29.
[수필] 엄마로 살아보니 알겠더라 엄마로 살아보니 알겠더라 ​ - 임은숙 ​ ​ ​ 겨울의 끄트머리해살이 눈부시다. 올 겨울에는 눈이 퍽이나 적게 내린다했더니 봄에 들어서려는 3월 언저리에서 장난 아닌 폭설을 퍼부었다. 시야에 안겨오는 온통 하이얀 빛... ​ 군데군데 두텁게 쌓였던 눈이 녹아 물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도로변을 따라 엄마의 손을 잡고 산책중이다. 꼬마처럼 나의 손을 꼭 잡은 엄마의 손이 따스하다. 그 손으로 자식 셋을 안고 업고 다독이고 혼내며 살아오셨으리. ​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엄마의 몸이 무겁게 내게로 덮쳐온다. 순간적으로 아프게 죄여오는 손의 통증과 내쪽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몸을 반대편으로 일으키려는 엄마의 움직임이 낯설지 않다. 어느 해 겨울 딸애와 쇼핑에 나섰다가 강판위에 넘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2023. 12. 28.
[시] 함께 가는 길 함께 가는 길 - 임은숙 동행의 길에는 수많은 샛길이 있다 나는 새가 아름다워 고개 들어 새를 쫓다가 맑은 물소리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다가 샛길로 접어들기 쉽다 부단히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초심을 유지한다면 동행의 길에 샛길은 없다 우리 다정한 얘기 멈추지 말자 우리 잡은 손 놓지 말자 어제보다 찬란한 너와 나의 하루가 간다 2023. 12. 27.
[시] 흔들리는 오후 흔들리는 오후 - 임은숙 바람과 나란히 걷고픈 계절이다 너의 눈빛을 닮은 하늘과 너의 손길을 닮은 여러 나뭇잎이 투명한 광선아래 三原의 연주를 시작한다 바야흐로 가벼움보다는 무거움이 밝음보다는 어둠이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한 시간이다 지난 어느 순간에 손님처럼 머물며 추웠던 기억도 눈부신 아름다움이었음을 또 다른 나에게서 전해 듣는다 흐르는 구름처럼 정처 없는 마음이 멋대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바람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스러진다 2023. 12. 27.
[시] 소리를 만나다 소리를 만나다 - 임은숙 눈 뜨고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만 감으면 소리로 보인다 하늘에서 구름이 기는 소리 바람이 흔들고 가는 나뭇잎의 가느다란 한숨이 베란다 빨랫줄에 매달린 옷가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소리 고요를 들었다 놓는 시계바늘소리 어디론가 잽싸게 내닫는 내 생각의 소리 하나같이 소리에 색깔을 덧칠하며 생동한 화폭으로 펼쳐진다 눈을 감고 소리를 본다, 세상을 조준한다 2023. 12. 26.
[시] 아직은 눈물이 필요할 때 아직은 눈물이 필요할 때 - 임은숙 오는 걸까 가는 걸까 왔다간 가고 갔다간 오는데 계절이 나를 찾아오는지 내가 추억을 부르는 건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지 묻지 않기로 한다 내 안에 그리움이 차면 올 것이요 내 속에 슬픔이 줄어들면 갈 것이기에 만나도 반갑지 아니하고 떠나도 서운치 않을 때까지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묻지 않기로 한다 2023. 12. 26.
[시] 친구가 그립다 친구가 그립다 - 임은숙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마땅히 할 이야기 없고 들려줄 상대가 없다 지나친 오만과 욕심은 늘 혼자인 공간을 정다운 기억 하나 없이 넓혀놓았고 둘러보아 부를 이름조차 없는 차가운 계절 안에서 첫눈이 내리기 전부터 나는 이미 봄을 갈망하고 있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아쉬운 풍경들 봄이 되고 싶다 냇물같이 누군가에게 흐르고 싶다 2023. 12. 25.
[시] 겨울 그리움 겨울 그리움 - 임은숙 밤하늘에만 별이 뜨는 건 아니지 겨울의 하얀 들에도 무수한 별이 뜬다 숲으로 사라지는 찬바람을 부르며 별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 때 반짝 반짝이는 그리움 너머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하얗게 쌓인 별들 중에서 너의 별을 찾는 겨울엔 찬바람소리마저 그리움인양 사치스럽다 2023. 12. 25.
[시]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 임은숙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설렘과 사소한 것에도 눈시울이 젖어드는 떨림과 가슴 벅찬 환희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새벽이슬 같이 투명한 그리움과 자정의 바람 끝에 머무는 목마른 기다림과 이유 없는 슬픔 종내는 내가 먼저 너를 향해 뛰어가고 입을 맞추기까지 침묵 속에 갇혀 바싹 말라버린 수많은 나날들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고 눈에 묻혀버리며 초록의 꿈 위에 다시 서는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2023. 12. 24.
[시] 가을날 꿈의 대화 가을날 꿈의 대화 - 임은숙 누군가 기억하고 있을까 흰 눈 사이로 멀어져가는 운명이라 불렸던 붉은 상처와 서로만을 위해 뛰던 아픈 심장과 같은 꿈을 꾸던 우리의 대화를 어둠이 내리고 또 한 계절이 가면 떨어지는 낙엽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 있을까 못 다한 아쉬움을 다독이는 저기 저 펑펑 퍼붓는 눈송이가 그만, 이제 그만 쉬지 않고 속삭이는데 잊는다며 놓지 못한 가을날의 설익은 사연 종일 하얗게 흐느낀다 2023. 12. 23.
[시] 다 잊고 살려고 해 다 잊고 살려고 해 - 임은숙 네가 내게 했던 말들과 내가 네게 보였던 미소 그리고 낮과 밤이 엇갈리는 경계에서 무리 지어 몰려다니던 하얀 꿈들과 새벽이슬의 반짝임을 다 잊고 살려고 해 슬프지 않은 가을이 없듯이 아프지 않은 사랑이 있을까마는 떠나고 싶은 계절과 머물고 싶은 사랑 사이에서 두 번 다시 너로 하여 웃지 않고 너로 하여 울지 않을 거야 그 숱한 날들의 회색빛 사연들과 깊어갈수록 아파야만 하는 슬픈 사랑의 줄다리기 이제 다 잊고 살려고 해 2023.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