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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나간 詩와 글216

[시] 몰라 몰라 - 임은숙 언젠가는 너의 깊은 눈망울과 그 눈빛에 담긴 진실을 떠올리며 어쩌면 이 순간의 감정 역시 일종의 사랑이었음에 눈시울을 붉힐지도 몰라 바람 부는 들판을 홀로 걸으며 네가 내게 했던 말들과 그 말 속에 감춰진 서운함을 떠올리며 단 한 번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죄책감에 한참을 흐느낄지도 몰라 나의 슬픔 모두 너의 것이었음을 나의 등은 항상 너를 향해 있었음을 세월이 남기고 간 너의 긴 그림자 한겨울의 텅 빈 거리를 서성이는데 정작 곁에 없는 너로 하여 멀어져간 기억에 울어버릴지도 몰라 오늘이 옛날로 되는 어느 날엔가 쓸쓸히 너의 이름 부를지도 몰라 2024. 1. 31.
[시] 끝나지 않은 이야기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임은숙 너와 나의 계절 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아쉬움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드는 순간 잊었다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이 여전히 뜨거운 너의 눈빛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한 순간에 생기를 되찾은 정다운 풍경에 어찌할 바를 몰라야 했다 상념은 어느 사이 저만치 익숙한 시간 위를 달리고 흔들리는 긴 그림자 위에 내리는 어둠이 낯설지 않다 밤새 거닐어야 할 꿈길엔 벌써 낙엽이 꽃처럼 날리고 싯누런 그리움이 뚝 떨어지고 뚝 떨어지고 2024. 1. 30.
[시] 위로 위로 - 임은숙 춥다는 내게 따뜻함을 느껴보라네 힘들다는 내게 기운을 내라 하네 슬프다는 내게 웃으라네, 활짝 웃으라네 숨 쉬기조차 귀찮다는 내게 이것저것 시도해보라네 약효가 전혀 없는 감기약 같은 말들 허공을 맴도는 바람 같은 위로 차라리 손이나 잡아줄 거지 어깨라도 내어줄 거지 2024. 1. 29.
[시] 下午의 풍경 下午의 풍경 - 임은숙 지금 내 곁에 있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물 같은 세상 산 같은 인연 숲이 보이는 창가 마주앉은 그대 눈빛에 하늘이 있습니다 구름이 있습니다 내가 있습니다 푸른 바람 맑은 새소리 정다운 茶 한 잔 정지된 시간 사이로 흐르는 꿈같은 고요 푸른 마음의 노래입니다 2024. 1. 28.
[시] 풀 풀 - 임은숙 사람들은 나를 풀이라 부른다 꽃이 아닌 풀이라 부른다 흔한 모양새에 향기라 할 것도 없는 그냥 풋풋한 냄새 어쩌면 풀이라 불리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풀이라 불린 세월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제 이름도 까맣게 잊은 채 풀의 삶을 산다 꽃이면 어떻고 풀인들 어떠리 어차피 때 되면 시드는 법 눈부신 태양 아래 바람과의 담소로 아름다운 날들이 내겐 행복이다 풀이라 불리며 꽃이 아닌 풀이라 불리며 오늘을 사는 나는 풀이다 2024. 1. 27.
[시] 꽃의 완성 꽃의 완성 - 임은숙 꽃의 완성은 피는 것이 아니라 本然의 향기를 남기는 것이다 어떤 나무에 무슨 이름으로 피건 가장 고운 빛깔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뿌릴 수 있는 適時에 필 일이다 내일 피어도 될 만큼 인생 길지 않다 머뭇거리지 말아 눈치 보지 말아 보란 듯이 찬란하게 이제 꽃잎을 터뜨려라 2024. 1. 26.
[시] 기억이 아름다워서 기억이 아름다워서 - 임은숙 포기 앞에서 추억은 뜨거운 것이다 생생한 기억의 조각들이 퍼즐놀이 하다 엇바꿔 끼워 넣은 아쉬움과 한숨 그리고 잿빛의 허무 눈을 감아도 보이는 익숙한 그림자 뒤에 악착같이 달라붙는 방울방울의 눈물 그 눈물을 미련이라 했다 나를 포함한 옹근 세상을 버려야만 소멸 가능한 미련이라 했다 아름다워서 기억이 아름다워서 잊지 못해 차마 놓을 수 없는 미련이라 했다 2024. 1. 24.
[시]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 - 임은숙 와인 잔이라 하여 와인만 담지는 않습니다 커피 잔이라 하여 커피만 담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밥그릇에 국을 담기도 하고 세숫대야에 흙탕물을 담기도 합니다 사랑이라 하여 내 마음에 그대만 담을 수는 없습니다 하늘의 푸름과 바람의 숨은 정열 봄꽃의 향기와 단풍의 붉은 상처 빗물의 언어와 엄동의 시린 아픔 나에게도 멀어져간 추억이 있고 내일의 꿈이 있습니다 그대를 마주하고 딴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대 앞에서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봄바람처럼 스치면 되겠습니다 타인 같은 그대의 무심함이 필요합니다 마음에 그늘이 가시고 다시 그대를 향해 꽃처럼 웃을 때까지 말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면 되겠습니다 2024. 1. 23.
[시] 스치다 스치다 - 임은숙 커피 한 잔에 생각나는 이름이 있고 음악 한 소절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는 喜悲의 사연 속에 밀어낼수록 또렷하게 감겨드는 얼굴 하나 스치는 것엔 흔적이 남는 법인가 소중할수록 놓치는 인연이 있고 잊으려 할수록 가슴에 남는 사람이 있다 2024. 1. 22.
[시] 마흔 일여덟 마흔 일여덟 - 임은숙 늘 오가던 길도 아주 가끔만 걸었으면 좋겠고 꽃바람의 푸른 손짓에도 누군가의 뜨거운 눈길에도 가슴이 뛰지 않는다 소나기보다는 보슬비가 좋은 내 나이 마흔 하고도 일여덟 시린 하늘 아래로 투명한 그리움이 밀려오던 시절 노란 해바라기로 서있던 정열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높지도 낮지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함이 마냥 편하다 창가로 내려앉은 오후햇살에 춘곤증이 몰려오고 낡은 트로트의 볼륨을 키우는 손끝에 바람처럼 일어서는 기억이 멀어서 뜨겁다 2024. 1. 21.
[시] 늦가을서정 늦가을서정 - 임은숙 바람의 오래된 장난 끝이 없다 짧은 오후 햇살아래 어수선한 차림의 사람들이 거리에 낙엽처럼 뒹굴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휘청이는 허무 내지는 한숨 잡을 수 없는 어제와 놓아야만 하는 현실의 무게 고스란히 계절에 묻혀버리고 떠나는 자 보내는 자 모두가 빈손이다 2024. 1. 20.
[시] 누군가의 꽃 누군가의 꽃 - 임은숙 꽃의 이름은 누가 달아주었고 꽃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내가 꽃이라면 이름은 무엇이며 꽃말은 무엇일까 향기로 이름을 짓는다면 어떤 향기를 지녔으며 색깔로 꽃말을 만든다면 어떤 색의 꽃일까 누군가의 가슴에 한 송이 꽃으로 피고 싶은 나는 고귀한 목련일까 순박한 들꽃일까 누군가에게 향기로 다가서고 싶은 나의 이름은 무엇이며 꽃말은 무엇일까 2024.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