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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나간 詩와 글216

[시] 가을비 가을비 - 임은숙 비가 내린다 입동立冬에 내리는 비 겨울비라 해야겠지만 아직은 보내고 싶지 않은 계절이기에 가을비라 우긴다 곱게 타오르다 살포시 내려앉아 바스락거리던 길섶의 낙엽 흐느낌이 처량하다 골목길 어딘가에서 풍기는 빵 굽는 냄새 허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살아있음이 축복인 가을비 내리는 11월의 어느 오후 2024. 3. 3.
[시] 낙엽의 무게 낙엽의 무게 ​ - 임은숙 ​ ​ 그림자 길게 그리며 계절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 왜소한 나무 그림자들 사이로 꺾인 풀대와 마른 잎이 서로 뒤엉켜 안 그래도 어수선한 머릿속을 사정없이 헤집어놓습니다 ​ 용서해야 할 일보다 용서받아야 할 일이 많은 마음이 무거운 계절입니다 ​ 차겁게 등을 보였던 이에게 가까이 다가서야 할 때입니다 따뜻이 미소를 건네야 할 때입니다 ​ 입동立冬을 앞둔 하루해는 짧기만 한데 내려앉고 쌓이고 흩어지는 낙엽의 몸짓이 가볍지 않습니다 2024. 3. 2.
[시] 기억소환 기억소환 - 임은숙 단풍나무 아래서 여름을 얘기합니다 뜨거운 눈빛과 다정한 손길에 가득했던 사랑을, 행복을 얘기합니다 하나의 그리움이 붉게 물들면 또 하나의 미움이 노랗게 물듭니다 바람이 강도를 높이는 시간 가슴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사연들이 안달이 났습니다 노을빛으로 변합니다 가지에 달라붙습니다 나뭇가지사이로 새어드는 노을에 일침一針을 맞은 이파리들이 가을, 가을, 가을 하며 잡을 수 없는 하루를 그러안습니다 지난 여름의 깊은 기억을 들추기엔 하루해가 참 짧은 계절입니다 2024. 3. 1.
[시] 12월은 어둡지 않다 12월은 어둡지 않다 - 임은숙 아쉬움이랄까 무거움이랄까 여러 가지 이유로 가까이 하지 못했던 것들과 실수로 놓쳐버린 것들을 새로 시도할 수 있는 알찬 열두 달이 이어질 12월은 연푸른 설렘이다 미소의 양量과 용기의 양量을 늘리어 다달이 지난 시간들보다 가슴 벅찰 수도 있는 12월에 한숨은 금물이다 12월은 결코 어둡지 않다 2024. 2. 29.
[시] 눈꽃 눈꽃 - 임은숙 눈이 내리고 큰 눈이 내리고 눈이 쌓이고 하얗게 눈이 쌓입니다 다시 눈발이 날리며 야윈 가지위에 소복이 눈꽃이 핍니다 바람이 붑니다 하얀 눈꽃을 털어냅니다 그 자리에 새록새록 피어나는 눈꽃이 더욱 눈부십니다 잎을 떠나보낸 나뭇가지에 푸른 희망이 반짝입니다 그대를 기다리는 창가에 눈이 내리고 눈이 쌓이고 눈이 날리고 눈꽃이 핍니다 2024. 2. 28.
[시] 바람 부는 날에는 먼 곳을 바라봅니다 바람 부는 날에는 먼 곳을 바라봅니다 - 임은숙 바람 부는 날에는 먼 곳을 바라봅니다 등에 맞혀오는 바람은 마음에 평화와 안도를 주고 아프게 뺨을 때리는 바람은 흐르는 눈물에 이유를 붙여줍니다 아침의 맑은 바람에 반짝이는 희망을 보고 해질녘 찬바람에는 아쉬움의 짙은 그늘을 그립니다 계절 따라 강약强弱이 바뀌는 바람을 닮은 나의 마음도 부풀다 이지러지기를 반복하며 여러 개의 춘하추동을 거쳐 다시 신록의 향기로 봄을 준비합니다 바람이 붑니다 먼 곳의 그대에게 가벼운 안부를 전합니다 2024. 2. 27.
[시] 새날 새날 - 임은숙 나뭇가지 사이에서 부지런을 떠는 겨울새의 작은 몸짓 오선보 위를 달리는 음표를 닮았다 뽀얀 안개 속에서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새날의 첫인사를 건넨다 시린 손을 불며 산 너머에서 오는 봄을 그려본다 두텁게 쌓인 눈 위에 까치발로 찍는 삼백예순다섯 걸음 중에 첫걸음 심히 조심스럽다 2024. 2. 26.
[시] 회자정리會者定離 회자정리會者定離 - 임은숙 짙은 슬픔이 내리는 해질녘 거리 온통 눈물입니다 낯선 겨울새의 옹알거림이 바야흐로 내려앉을 어둠 속의 나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더 이상 부르지 마십시오 이름만으로도 가슴 저미는 이별입니다 익숙한 도시의 낯선 창공에 부옇게 흩어지는 긴 한숨 會者定離의 인생섭리 무겁게 껴안습니다 2024. 2. 25.
[시] 하얀 공백 하얀 공백 - 임은숙 하루하루가 거기서 거기다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내 아침의 풍경은 고스란히 간직했다 자정에 바치는 제물 어제라는 이름표를 달고 기억 밖으로 밀려가는 허무 내지는 실소失笑 울컥 뜨거운 것을 토해내고 싶은 충동 멀리 굽이를 도는 자정의 아쉬움 2024. 2. 24.
[시] 2월은 새벽이다 2월은 새벽이다 - 임은숙 지독한 아픔을 겪어본 사람은 2월을 안다 텅 빈 마음의 방에 조용히 스며드는 한 줄기 빛은 봄의 부름이다 눈을 감고 있으면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고 꽃의 향기가 전해진다 무거운 것 어두운 것 모두 떨쳐버리고 가벼운 것 눈부신 것만 내 안에 채울 준비가 되어있는 2월은 금세 가버리는 어둑어둑한 새벽이다 2024. 2. 23.
[시] 입춘立春 입춘立春 - 임은숙 푸른 하늘 아래 초록바람 스치는데 대지는 아직 하얀 빛깔 거두지 않았다 가벼워지는 옷차림과 감출 수 없는 화사한 미소들 마음 마음에서 한없이 솟구치는 설렘을 주체하지 못하는 2월 그리고 입춘立春이다 볼품없이 굳어있던 강변에 폭신폭신한 흙의 기운 누가 뭐래도 이제 봄인가보다 2024. 2. 22.
[시] 꽃인 체 푸른 계절에 서서 꽃인 체 푸른 계절에 서서 - 임은숙 슬픈 겨울이 가고 있습니다 켜켜이 쌓인 눈 위에 두텁게 얼어붙은 아픔 아픔이 녹아 녹아서 어딘가로 흘러가면 좋으련만 커피를 마주하는 그 짧은 시간마저도 통째로 앗아가는 지독한 통증은 도저히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바람 없는 날 눈부신 햇살 아래 거짓말처럼 터뜨리는 꽃잎의 몸짓을 보고도 꽃처럼 웃을 수 없다면 녹지 않는 눈이 내 안에 가득 쌓였기 때문이겠지요 꽃인 체 푸른 계절에 서서 모서리 둥근 바람 뒤에 숨어 하얗게 한숨을 내쉬는 아픈 봄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2024.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