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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나간 詩와 글216

[시] 날다 날다 - 임은숙 신은 공평합니다 새에게는 한 쌍의 반짝이는 날개를 주고 인간에게는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꿈의 날개를 주었습니다 ​ 새는 하늘을 날지만 우리는 꿈을 향해 납니다 ​ 새들끼리는 서로의 날개가 어떤 모양이고 무슨 색깔인지 한눈에 볼 수 있지만 날개를 숨기고 있는 우리는 서로의 꿈이 무엇이고 얼마나 큰지 마음을 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 빌릴 수도 빌려줄 수도 없는 남의 날개로는 대신할 수 없는 꿈으로의 비상 모든 추락의 원인은 비상입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엎드리면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기에 빙산이 앞을 막아도 뚫어야만 합니다 ​ 언젠가는 봄이 오고 시간 앞에서 모든 것은 키를 낮추게 된다는 진리 날개를 가진 자들의 희망입니다 2024. 2. 12.
[시] 봄이라서, 봄이기에 봄이라서, 봄이기에 - 임은숙 스치는 바람 붓에 초록 물감 듬뿍 묻혀 휘갈긴 봄의 詩 현란하다 소리 없이 부서지는 고요 코끝에 머무는 짙은 향기 봄이라서 봄이기에 마음껏 슬퍼해도 좋다 그 슬픔마저 꽃으로 필거니까 봄이라서 봄이기에 마음껏 설레도 좋다 그 설렘마저 향기로 남을 거니까 창가에 내려앉는 햇살에 눈이 부신 4월은 무가내로 매달리는 그리움으로 흩어지는 생각 줏기에 여념이 없다 2024. 2. 11.
[시] 원점에서 원점에서 ​ - 임은숙 ​ ​ 쓰다 버린 詩들이 나의 삶처럼 초라하다 ​ 설렘으로 시작한 아침들은 습관처럼 도시의 어둠 속에 잠겨버리고 ​ 나의 길에 대해 얘기해주는 이 없고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이 없다 ​ 옛 꿈은 나와의 거리를 한사코 좁히지 않는데 날이면 날마다 다른 아침을 기다리며 출발할 수 없는 길 위를 맴돈다 ​ 짙은 고요 時針의 길을 따라 흐르는데 무의미한 제자리걸음 언제까지 이어질까 2024. 2. 10.
[시] 11월에는 약속을 하지 말자 11월에는 약속을 하지 말자 - 임은숙 11월에는 굳이 약속을 하지 말자 바람 찬 날 낙엽 위를 걷다 손 녹이러 들어선 길옆 찻집에서 문득 떠오른 이에게 안부를 전하자 맑은 茶 한 잔에 마음마저 녹아드는데 때 맞춰 날리는 첫눈이 축복처럼 유리창에 매달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온 볼이 발간 이의 모습은 눈송이 같은 설렘이더라 가는 계절의 아쉬움을 애써 기억하지 말자 짧은 11월에는 그리운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자 2024. 2. 9.
[시] 깨우지 마세요 깨우지 마세요 ​ - 임은숙 ​ ​ 먼 들녘 어딘가에서 가만히 날 부르는 소리 스치는 바람에 끊어졌다 이어졌다 합니다 ​ 꽃이 남긴 향기 어둠처럼 들판을 덮고 가는데 차가운 빗방울에 어지럽게 흩어지는 지난 사연들 ​ 애써 외면하는 눈망울에 매달리는 뜨거운 것은 아마 미련이겠지요 ​ 그대 있어 풍성했던 나의 가을은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짙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 찬비 속을 방황하는 나를 닮은 이여 서둘지 말아요 아직은 그대로 두어요 ​ 엄동의 추위 달래줄 그 뜨겁고 아픈 기억을 아직은 깨우지 마세요 2024. 2. 8.
[시] 겨울안부 겨울안부 ​ - 임은숙 ​ ​ 별과 꽃과 새와 나무 바람이 들려주던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들과 자유의 푸른 날갯짓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 그대의 잔잔한 미소와 아무 생각 없이도 쉬이 잠들 수 있었던 수많은 밤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 길모퉁이마다 곱게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계절노트에 또박또박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순간순간 나누었던 얘기와 마주잡은 두 손의 떨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 잊지 않았습니다 놓지 않았습니다 아직 내 안에 있는 그대입니다 ​ 거울 속에 낯선 표정과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그대가 두고 간 그리움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키를 늘려왔나 봅니다 ​ 멀지만 무척이나 가까이 있는 그대 ​ 서리꽃이 하얗게 피어난 겨울아침 창가에서 깊이 우러난 마음茶 한 잔으로 안부 .. 2024. 2. 7.
[시] 중년의 길 중년의 길 - 임은숙 세상 살면서 처음 아닌 길이 없겠지만 하나씩 나이를 더할수록 서툴고 두려운 길입니다 정열 하나로 무작정 앞을 향하던 청춘의 길과는 사뭇 다른 조심스럽고 불안한 길입니다 무가내로 달려드는 한여름 밤의 풀벌레 같은 이제 추억이라 불리는 끈적끈적한 기억들도 있고 포근한 잠자리보다 반가운 친구 같은 아침도 있습니다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보다는 그 어떤 구속이 그립기도 한 새벽부터 황혼녘까지 해걸음을 세는 외롭고 추운 길입니다 2024. 2. 6.
[시] 봄꽃예찬 봄꽃예찬 ​ - 임은숙 ​ ​ 차례를 기다리는 배우처럼 앞선 꽃을 밀어내며 등장하는 봄꽃들은 왜 동시에 꽃잎을 열지 못하는지 ​ 동백, 매화에게 한참 뒤떨어진 개나리와 산수유 노랗게 미소 터뜨리면 제비꽃, 목련, 진달래, 벚꽃이 여기저기서 손짓하고 연보라 빛깔을 자랑하며 라이라크가 짙은 향기 토해내니 마음엔 술렁술렁 바람이 입니다 ​ 남아있는 향기를 채 비우기도 전에 코끝에 달라붙는 이질감 같은 계절에 피는 전혀 다른 꽃들의 잔치입니다 ​ 눈부신 봄의 명부에 고운 이름 빠질까 잊힐까 두려워 꽃들은 그렇게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하나씩 순서대로 피나 봅니다 2024. 2. 5.
[시] 놓기, 버리기, 비우기 놓기, 버리기, 비우기 - 임은숙 꽃다워야 꽃이다 제 아무리 화려한 겉모양을 하고 있어도 향기가 없으면 꽃이라는 이름에 자격 미달이다 바람다워야 바람이다 계절에 맞춰 强弱을 조절하는 능력 없이는 바람이라 할 수 없다 꽃이 아니면서 향기를 탐했다 바람이 아니면서 능력 밖의 세계를 꿈꿨다 가장 나다워지기 위해서는 움켜쥔 주먹부터 풀어야 함을 알면서도 선뜻 행하지 못하는 아둔함 우울한 아침 블랙커피 한 잔에 미간을 찌푸리는 이유 쓴맛 때문이 아니었다 2024. 2. 4.
[시] 숨 쉬는 고요 숨 쉬는 고요 - 임은숙 靜적인 것보다 動적인 것을 선호한다 낮이 밤이 되고 자정에서 새벽으로 이어지는 순간순간을 꽃이 피고 지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는 계절 바뀜을 부딪치는 것들을 흘러가고 있는 것들을 짙어가고 있는 것들을 깊어가고 있는 것들을 숨 쉬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내 안에서 커가는 추억을 소환한다 2024. 2. 3.
[시] 시인은 시인은 - 임은숙 비를 비라 말하지 않고 슬픔이라 하기도 하고 그리움이라 하기도 한다 밤을 밤이라 말하지 않고 방황이라 하기도 하고 희망이라 하기도 한다 바람을 바람이라 말하지 않고 시련이라 하기도 하고 설렘이라 하기도 한다 봄을 청춘이라 하고 꽃을 여인이라 한다 시인은 겨울을 겨울이라 하지 않는다 2024. 2. 2.
[시] 푸른 일기장 푸른 일기장 - 임은숙 온 들녘이 연초록으로 물들 때의 일입니다 한 해 중에 바람이 가장 부드러울 때의 일입니다 부서지는 오월의 햇살이 손바닥 가득 반짝일 때의 일입니다 짧은 낮잠 꿈속이 온통 기쁨일 때의 일입니다 풀잎같이 다정한 글자들이 일기장 사이사이에서 기지개를 켭니다 2024.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