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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나간 詩와 글216

[시] 지금 이 시간 지금 이 시간 - 임은숙 너의 것이라 할 수 있고 나의 것이라 할 수 있고 우리의 것이라 할 수도 있는 누구나 절대자가 되어 지배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 네가 뛸 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 너의 밤은 항상 나의 것보다 짧았고 같은 계절을 가면서도 너는 언제나 저만치 앞에서 나에게 등을 보인다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앞에 이제 진정 깨어야 할 때 바로 지금 이 시간 2024. 1. 9.
[시] 가을 숲에서 가을 숲에서 - 임은숙 방향을 가늠키 어려워라 사면이 노을빛이다 여기저기서 우수수 날 부르는 소리 가을의 숲은 곳곳에 너를 숨기고 있다 와버린 기억은 밀어낸다고 가지 않고 외딴 벤치에 어둠이 내린지도 이슥하건만 날 부르는 다정한 음성 그치지 않더라 날리는 기억에 설음은 한 가득인데 종내 드러나지 않는 너의 모습은 어느 하늘아래 찬바람 속을 서성일까 2024. 1. 7.
[시] 그대가 아니라도 그대가 아니라도 - 임은숙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봄바람이 그토록 좋았던 건 그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름 모를 새소리 음악처럼 들리고 꽃잎 안고 흐르는 강물이 그토록 눈부신 것도 그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대가 아니라도 봄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을 노래하기 위해 태어난 새와 얼음 밑에서도 흘러야만 하는 강 그대로가 운명인 것을 예고 없이 왔다가 몇 방울의 눈물을 기어코 거두어가는 붉은 계절의 쓸쓸함도 그대와는 무관한 자연의 섭리인 것을 굳이 그대가 아니라도 세상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을 2024. 1. 6.
[시] 詩 詩 - 임은숙 늦가을 들녘같이 쓸쓸하고 삭막한 마음에 더 이상 詩는 없습니다 그리운 만큼 詩를 쓰던 내게 외로운 만큼 詩를 쓰라 하시는 건 너무나 잔인한 일입니다 그대 없는 봄은 꽃이 피어도 향기가 없고 그대 없는 하루하루는 혹한의 겨울입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는 슬픔에 목 놓아 통곡할라 치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다정한 음성 그대, 그대입니다 짙은 어둠이 밀려가고 꿈속에서 부르는 그대 이름 詩가 되었다가 차가운 새벽이슬로 사라집니다 그대 없이 내게 詩는 없습니다 2024. 1. 5.
[시] 꼭두각시 인생 꼭두각시 인생 - 임은숙 곧게 가라기에 에돌며 헤매지 않았고 욕심을 버리라기에 손에 쥐어진 것조차도 망설임 없이 놓아버렸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니 희미한 발자국마저 남아있지 않다 나무그늘에 앉아 나는 새들의 날갯짓이라도 흉내 내볼 걸 봄 한철 여러 꽃의 향기라도 알아둘 걸 텅 빈 손에 텅 빈 속에 텅 빈 머리 내 것이 없다 곧게 가란다고 욕심을 버리란다고 무심히 흘려보낸 세월 그렇다할 아픔 한 조각마저 내게는 없다 2024. 1. 4.
[시] 선물 선물 - 임은숙 1 물소리인가 새소리인가 포장을 뜯지 않은 선물에서 맑고 고운 소리가 들린다 굳이 열지 않고도 느껴지는 너의 마음 2 또 하나의 처음을 경험한다 예상을 빗나간 전혀 생각 밖의 선물이다 너는 늘 그랬다 하나를 주며 여러 과제를 곁들인다 올망졸망 기억의 편린들 내 얼굴에 꽃이 핀다 3 멀어져간 시간을 당겨온다 이미 떠나서 추억이 된 줄 알았던 사연들이 여전히 내 안에 악착같이 존재함을 이제 나의 아침과 저녁 그리고 새벽은 또 다시 너의 향기로 아름다울 것이다 2024. 1. 3.
[시] 봄빛에 취해 봄빛에 취해 - 임은숙 내가 걷는 숲에만 봄이 온 건 아닐 터 나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어딘가에도 이맘때면 봄풀이 무성할거다 바람이 스치는 자리마다 거짓말처럼 펼쳐지는 초록물결 볕이 스미는 자리마다 꿈처럼 일어서는 희망, 희망들 바람의 손을 잡고 눈부신 햇살로 너에게 닿아 삭막한 너의 마음 숲에 냇물 되어 흐르면 새소리 정다운 우리의 낙원에는 봄빛이 무성하겠지 2024. 1. 2.
[시] 봄이면 바람둥이가 됩니다 봄이면 바람둥이가 됩니다 - 임은숙 개나리 노란 미소에 발목 잡혀 어쩔 줄 모르다 이내 연분홍 벚꽃을 곁눈질하며 진달래 고운 자태에 침 흘린다 하늘 땅 천지 온통 향기, 향기다 여기저기 킁킁대다 종내는 짙은 라이라크 향기에 빠져든다 바람의 소맷자락 부여잡은 깃털 같은 마음과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걸탐스런 눈빛 모두를 내 안에 가두고 싶은 고스란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분출구를 찾는 바람둥이 욕구 부르지 마오 꽃이 질까 임이 떠날까 두려우니 그대 나를 부르지 마오 2024. 1. 1.
[수필] 최고의 음악 최고의 음악 ​ - 임은숙 ​ ​ ​ “어정칠월”이라는 말이 있다. 어정어정하는 사이에 칠월이 후딱 가버린다는 뜻이다. 어감도 재미있고 리듬감도 느껴지는 이 말을 우리 인생에 적용해도 참 멋지지 않을가싶다. 찌는듯한 삼복더위 속에서도 용케 잎을 키우는 나무의 그림자가 8월에 들어서며 여유롭게 그 폭을 넓히고 있다. ​ 8월의 한낮엔 졸음의 유혹을 물리치기 힘들다. 깜빡 잠들었다가 사각사각하는 귀맛 좋은 소리에 억지스레 눈을 뜨니 저만치 컴퓨터를 마주하고 앉은 딸애의 뒷모습이 보인다. 짧은 머리에 반나마 드러난 귀염성스러운 귀불 아래로 한쪽 볼이 실룩이는 것이 보이는 것과 동시에 내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덥고 짜증난 일상에 모처럼 즐거운 시간이다. ​ 노랫말이 아름다워 귀가 솔깃해지는 그 어떤 발.. 2023. 12. 29.
[수필] 엄마로 살아보니 알겠더라 엄마로 살아보니 알겠더라 ​ - 임은숙 ​ ​ ​ 겨울의 끄트머리해살이 눈부시다. 올 겨울에는 눈이 퍽이나 적게 내린다했더니 봄에 들어서려는 3월 언저리에서 장난 아닌 폭설을 퍼부었다. 시야에 안겨오는 온통 하이얀 빛... ​ 군데군데 두텁게 쌓였던 눈이 녹아 물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도로변을 따라 엄마의 손을 잡고 산책중이다. 꼬마처럼 나의 손을 꼭 잡은 엄마의 손이 따스하다. 그 손으로 자식 셋을 안고 업고 다독이고 혼내며 살아오셨으리. ​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엄마의 몸이 무겁게 내게로 덮쳐온다. 순간적으로 아프게 죄여오는 손의 통증과 내쪽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몸을 반대편으로 일으키려는 엄마의 움직임이 낯설지 않다. 어느 해 겨울 딸애와 쇼핑에 나섰다가 강판위에 넘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2023. 12. 28.
[시] 함께 가는 길 함께 가는 길 - 임은숙 동행의 길에는 수많은 샛길이 있다 나는 새가 아름다워 고개 들어 새를 쫓다가 맑은 물소리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다가 샛길로 접어들기 쉽다 부단히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초심을 유지한다면 동행의 길에 샛길은 없다 우리 다정한 얘기 멈추지 말자 우리 잡은 손 놓지 말자 어제보다 찬란한 너와 나의 하루가 간다 2023. 12. 27.
[시] 흔들리는 오후 흔들리는 오후 - 임은숙 바람과 나란히 걷고픈 계절이다 너의 눈빛을 닮은 하늘과 너의 손길을 닮은 여러 나뭇잎이 투명한 광선아래 三原의 연주를 시작한다 바야흐로 가벼움보다는 무거움이 밝음보다는 어둠이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한 시간이다 지난 어느 순간에 손님처럼 머물며 추웠던 기억도 눈부신 아름다움이었음을 또 다른 나에게서 전해 듣는다 흐르는 구름처럼 정처 없는 마음이 멋대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바람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스러진다 2023.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