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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詩모음

任恩淑 감성詩 모음[1] "물이 가는 길" 외

by 수ㄱi 2020. 12. 19.

 

 

 

 

물이 가는 길

 

            - 임은숙

 

 

나의 진실 하나가

그대에게 닿아

산이 되었고

 

그대의 믿음 하나가

내게로 와

물이 되었습니다

 

하얀 그리움이 눈물 되어

긴 기다림이 한숨 되어 흐르는

저 강

 

세월 가도

변하지 아니할

굳건한 모습의

저 산

 

물이 가는 길을

산은 알고 있습니다

 

 

 

 

 

 

꽃이 피는 날에

 

            - 임은숙

 

 

흔들리며 피는 꽃이

아름다운가?

 

사랑은 왜 이토록

너와 나를 아프게 흔드는 것인가

 

연둣빛나무사이로

스치는 기억

 

사랑은 기어코

너와 나를 하나로 묶어 흔들고 있는데

 

외로움에 익숙해지려고

이곳에 서있는 나를

바람조차 그냥 두지 않는다

 

꽃이 피었으니까

웃으라 한다

간지러운 햇살아래

꽃잎처럼 웃으라 한다

 

 

 

 

 

 

꽃이 되어

 

           - 임은숙

 

 

눈물만큼 화사하게

한숨으로 향기를 토하며

긴 기다림을 인내한

아픔이라 불렸던 것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켭니다

 

천자만홍

꽃이 피고 지는 의미

 

어두운 밤이 가면 새아침이 온다고

눈물로 피워낸 꽃이 더 아름다운 거라고

저들만의 언어로

분주히 안부를 주고받습니다

 

추웠다고 그리웠다고

꽃이 되어

누군가에게 마음 전하고픈

햇살 고운 어느 봄날입니다

 

 

 

 

 

 

봄 숲에서

 

       - 임은숙

 

 

지난 밤

내게로 왔던 고운 새

이 길을 따라가면 다시 만날까

 

한 잎 두 잎

꽃이 피는 날

바람 따라 길을 나섰네

 

간지러운 햇살아래

내 님의 손짓 같은 풀잎을 스쳐

투명한 봄빛 속에 내가 섰네

 

밤새 그리움을 얘기하던

이름 모를 작은 새

어느 숲에 깊이 잠들었나?

 

어설픈 흔적 따라

무작정 찾아 나선 간밤의 꿈 이야기

 

꽃잎 가까이 머무는 바람처럼

지난밤 네 모습을 떠올리며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가지를 뻗는다

 

 

 

 

 

 

인연이란

 

             - 임은숙

 

 

남남이던 두 사람이 하나로 만나

동화 속의 뾰족한 성곽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공주와 왕자 같은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려면

끝이 없는 기다림과

노랗게 타들어가는 그리움과

때로는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미움마저도

견디어내야 하는가봅니다

 

그대의 빈자리로 하여 느껴지는

가을하늘같이 휑뎅그렁한 공허감

시간이 갈수록 풍선처럼 부풀어만 가는

그대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

그 한 조각의 공허함이

그 한 조각의 그리움이

마침내는 커다란 미움이 됩니다

 

한없이 밉다가도 새삼스레 그리워지는

그 미움과 그리움 속에서

그대와 나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나 한 시각도 멈추지 않고

저 멀리 신기루마냥 우뚝 솟은

뾰족한 성곽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

 

      - 임은숙

 

 

새는

그리움을 모른다

 

한때

날수 있는 그들을 시샘하고 부러워하며

너와의 간격에 하얗게 한숨을 던졌던

내 속의 허망한 욕심이

어쩌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간격 앞에서

때 이른 날갯짓을 반복했는지도 모른다

 

가을이라는 계절 안에서

나는

이미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마음에게 닿는 길

 

서두름이 필요 없는

그 길 위에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날개가 아닌, 찬바람을 인내할 햇살 같은 믿음임을

 

 

 

 

 

 

세상 마주하기

 

          - 임은숙

 

 

인연의 꽃씨 하나

흙속에 묻혀

들리지 않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꽃과

잎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앞에 섰다

 

하나의 줄기에서 시작된

만남의 순간부터

꽃과 잎은

이미 알고 있었다

 

먹구름도

비바람도

함께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걸어온 시간보다

가야 할 길이 먼 운명

 

어둠을 준비하는

아침

둘의 미소가 향기롭다

 

 

 

 

 

 

자정의 빗소리

 

         - 임은숙

 

 

자정의 빗소리는

촉촉한 그리움이다

 

다독이다 꼭 품어주는

너의 손길 같은 반가움이다

 

혼자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가슴 울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너의 부름 앞에

토해낸 나의 진실은 뜨거운 것이었다

 

묻고 답하며

어둠이 드러낸 하얀 속살 위로

잔잔히 흐르는 선율

 

새벽 창에 매달리는

저 빗소리

밀어낼 수 없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잠자지 않는다

 

                    - 임은숙

 

 

어둠을 가르며

그리움을 조각낸다

 

밤기차 꽁무니에

달라붙는

수천수만 개의

사무침

 

그리고

먼 길에 오른

나의 상념

 

기적소리, 그 행선지를 떠올리며

미지의 하얀 밤을 가고 있다

 

 

 

 

 

지나가겠지요

 

           - 임은숙

 

 

언젠가는 그치는

빗물처럼

예고 없이 오고가는

계절처럼

무게를 더해가는 젖은 상념도

통째로 나를 휘두르는 어두운 방황도

때가 되면 지나가겠지요

 

열린 창으로 밀려드는 어둠도

찻잔 깊숙이 가라앉는 앙금 같은 슬픔도

잔잔한 음악이 있어 반가움이겠지요

 

선율 타고 흐르는

외로움마저 없었다면

그 무엇으로 견뎌왔을까?

 

홀로일 수 없는 나와

꼭 그대여야만 하는 이유

나란히 함께 서고픔이다

 

그대 빗물 되어 내리면

나는 물이 되어 흐르겠지요

 

시간이 파놓은 곬을 따라

어딘가로 자꾸만 흐르겠지요

 

 


임은숙(任恩淑) 시인 :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집 “하늘아,별아” “사랑디스크”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