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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사랑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 - 임은숙 ​ ​ 쪽빛 하늘 아래 나무와 바람의 속삭임이 정답다 ​ 긴 세월 이어지는 둘만의 밀어 ​ 남겨둔 그리움이 있어서 부르는 손짓이 있어서 어쩌면 언젠가 바람처럼 나를 스친 너 바람처럼 다시 올지도 ​ 먼 기억에 눈시울이 젖어드는데 우수수 낙엽 지는 소리 ​ 사랑이었을까 몸살 같은 그 감정들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2024. 3. 7.
[시] 그것이 인연인 걸 그것이 인연인 걸 - 임은숙 시작과 끝은 결국 하나인 것을 식어버린 찻잔과 두 의자 사이의 간격을 왜 바보처럼 외면하려 했을까 만남에서 이별로 완성되는 그것이 인연인 걸 노을빛 강물 위에 떠내려가는 꽃잎처럼 놓치고 나면 아무리 간절해도 잡을 수 없는 그것이 인연인 걸 2024. 3. 6.
[시] 기억의 숲을 거닐다 기억의 숲을 거닐다 - 임은숙 마음 한구석에 조그맣게 옹크리고 있다가 문득 솟구치는 기억에 생각은 어느덧 계절을 거슬러 옛 풍경 속에 섭니다 이제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아침을 맞는 그대와 내가 한 공간에 머물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헤어나고 싶지 않은 안개 자욱한 기억의 숲입니다 여름날 오후 무심코 펼쳐든 낡은 책갈피에서 부서지듯 바닥에 내려앉는 색 바랜 단풍잎이 불러온 기억입니다 잊으려고 놓으려고 버리려고 다짐을 거듭했던 그 가을이 다시 그리워지는 뜨거운 여름입니다 2024. 3. 6.
[시] 여름의 창을 닫습니다 여름의 창을 닫습니다 - 임은숙 구월이 왔습니다 아직은 느낌 뿐인 가을입니다 시월에는 견주지 못할 향기를 조용히 펼쳐놓으며 내가 걷는 길 위에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을 배신한 바람이 청자빛 하늘을 배회하고 꽃잎마다에 가을을 담은 코스모스의 몸짓이 심히 가볍습니다 붉은 단풍을 하나 둘씩 터뜨리며 이제 가을은 서서히 키를 늘려가겠지요 꽃의 화려함을 부러워하지 않겠습니다 단풍의 눈부심을 사랑하겠습니다 이제 여름의 창을 닫습니다 2024. 3. 5.
[시] 시월이 간다 시월이 간다 ​ - 임은숙 ​ ​ 어딘가에 꽁꽁 숨어버린 바람을 찾아 구절초 만발한 들녘에서 하루해를 보내고 내가 쫓는 건지 끌려가는 건지 모를 바람과 나란히 시월의 끝자락에 섰다 ​ 때가 되면 절로 나타나서 내 등을 밀거나 앞머리를 쓸어 올릴 것을 ​ 약간의 서운함이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을 뿐 지금까지도 놓지 못한 오월을 보낼 때처럼 아프거나 슬프지 않다 ​ 보낸다는 것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온다는 믿음이다 ​ 창밖의 가을비소리 내려앉을 어둠에 처량함을 감추는데 아름다운 재회를 위한 시월의 이별가에 가슴이 뛴다 2024. 3. 4.
[시] 가을비 가을비 - 임은숙 비가 내린다 입동立冬에 내리는 비 겨울비라 해야겠지만 아직은 보내고 싶지 않은 계절이기에 가을비라 우긴다 곱게 타오르다 살포시 내려앉아 바스락거리던 길섶의 낙엽 흐느낌이 처량하다 골목길 어딘가에서 풍기는 빵 굽는 냄새 허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살아있음이 축복인 가을비 내리는 11월의 어느 오후 2024. 3. 3.
[시] 낙엽의 무게 낙엽의 무게 ​ - 임은숙 ​ ​ 그림자 길게 그리며 계절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 왜소한 나무 그림자들 사이로 꺾인 풀대와 마른 잎이 서로 뒤엉켜 안 그래도 어수선한 머릿속을 사정없이 헤집어놓습니다 ​ 용서해야 할 일보다 용서받아야 할 일이 많은 마음이 무거운 계절입니다 ​ 차겁게 등을 보였던 이에게 가까이 다가서야 할 때입니다 따뜻이 미소를 건네야 할 때입니다 ​ 입동立冬을 앞둔 하루해는 짧기만 한데 내려앉고 쌓이고 흩어지는 낙엽의 몸짓이 가볍지 않습니다 2024. 3. 2.
[시] 기억소환 기억소환 - 임은숙 단풍나무 아래서 여름을 얘기합니다 뜨거운 눈빛과 다정한 손길에 가득했던 사랑을, 행복을 얘기합니다 하나의 그리움이 붉게 물들면 또 하나의 미움이 노랗게 물듭니다 바람이 강도를 높이는 시간 가슴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사연들이 안달이 났습니다 노을빛으로 변합니다 가지에 달라붙습니다 나뭇가지사이로 새어드는 노을에 일침一針을 맞은 이파리들이 가을, 가을, 가을 하며 잡을 수 없는 하루를 그러안습니다 지난 여름의 깊은 기억을 들추기엔 하루해가 참 짧은 계절입니다 2024. 3. 1.
[시] 12월은 어둡지 않다 12월은 어둡지 않다 - 임은숙 아쉬움이랄까 무거움이랄까 여러 가지 이유로 가까이 하지 못했던 것들과 실수로 놓쳐버린 것들을 새로 시도할 수 있는 알찬 열두 달이 이어질 12월은 연푸른 설렘이다 미소의 양量과 용기의 양量을 늘리어 다달이 지난 시간들보다 가슴 벅찰 수도 있는 12월에 한숨은 금물이다 12월은 결코 어둡지 않다 2024. 2. 29.
[시] 눈꽃 눈꽃 - 임은숙 눈이 내리고 큰 눈이 내리고 눈이 쌓이고 하얗게 눈이 쌓입니다 다시 눈발이 날리며 야윈 가지위에 소복이 눈꽃이 핍니다 바람이 붑니다 하얀 눈꽃을 털어냅니다 그 자리에 새록새록 피어나는 눈꽃이 더욱 눈부십니다 잎을 떠나보낸 나뭇가지에 푸른 희망이 반짝입니다 그대를 기다리는 창가에 눈이 내리고 눈이 쌓이고 눈이 날리고 눈꽃이 핍니다 2024. 2. 28.
[시] 바람 부는 날에는 먼 곳을 바라봅니다 바람 부는 날에는 먼 곳을 바라봅니다 - 임은숙 바람 부는 날에는 먼 곳을 바라봅니다 등에 맞혀오는 바람은 마음에 평화와 안도를 주고 아프게 뺨을 때리는 바람은 흐르는 눈물에 이유를 붙여줍니다 아침의 맑은 바람에 반짝이는 희망을 보고 해질녘 찬바람에는 아쉬움의 짙은 그늘을 그립니다 계절 따라 강약强弱이 바뀌는 바람을 닮은 나의 마음도 부풀다 이지러지기를 반복하며 여러 개의 춘하추동을 거쳐 다시 신록의 향기로 봄을 준비합니다 바람이 붑니다 먼 곳의 그대에게 가벼운 안부를 전합니다 2024. 2. 27.
[시] 새날 새날 - 임은숙 나뭇가지 사이에서 부지런을 떠는 겨울새의 작은 몸짓 오선보 위를 달리는 음표를 닮았다 뽀얀 안개 속에서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새날의 첫인사를 건넨다 시린 손을 불며 산 너머에서 오는 봄을 그려본다 두텁게 쌓인 눈 위에 까치발로 찍는 삼백예순다섯 걸음 중에 첫걸음 심히 조심스럽다 2024.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