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네가그립다149 27. 겨울밤 겨울밤 - 임은숙 짙은 적막의 밤 몽롱한 시선은 마땅히 둘 곳이 없고 맑은 귀는 사방으로 열려있다 바람의 작은 기척에 혹시나 하며 문을 여는데 어느 사이 바람은 멈추고 눈은 퍼붓고 그대는 보이지 않네 맨발에 신발 꿰신고 사립문 밖을 서성이는데 하염없이 눈만 쌓이고 어디에도 그대는 보이지 않네 2022. 12. 25. 28. 끝나지 않은 이야기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임은숙 너와 나의 계절 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아쉬움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드는 순간 잊었다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이 여전히 뜨거운 너의 눈빛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한 순간에 생기를 되찾은 정다운 풍경에 어찌할 바를 몰라야 했다 상념은 어느 사이 저만치 익숙한 시간 위를 달리고 흔들리는 긴 그림자 위에 내리는 어둠이 낯설지 않다 밤새 거닐어야 할 꿈길엔 벌써 낙엽이 꽃처럼 날리고 싯누런 그리움이 뚝 떨어지고 뚝 떨어지고 2022. 12. 24. [셋] 빈 마음엔 슬픔이 없다 [셋] ========== 빈 마음엔 슬픔이 없다 뭔가로 가득 찬 마음에서 슬픔은 비롯된다 2022. 12. 21. 1. 꽃잎이 지고 있습니다 꽃잎이 지고 있습니다 - 임은숙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오렌지 빛 노을이 슬프도록 아름답습니다 긴 그림자 하나 품은 오월의 숲길이 텅 빈 듯 가득 차있습니다 사랑도 꽃처럼 피었다 지는 것임을 미움도 때가 되면 꽃잎처럼 흩날리는 것임을 그대 다시 꽃처럼 피었는데 길 잃은 내 마음은 향기조차 느낄 수 없습니다 어깨 위에 수없이 내려앉는 꽃잎이 간절한 그대 부름인 줄 알면서 이토록 쉬이 외면하는 지독한 무심함이 낯설지만 퍽이나 자연스럽습니다 가장 찬란했던 내 생의 순간순간이 시간이 파놓은 세월구덩이에 꽃잎처럼 쌓이고 있습니다 2022. 12. 20. 2. 詩 詩 - 임은숙 늦가을 들녘같이 쓸쓸하고 삭막한 마음에 더 이상 詩는 없습니다 그리운 만큼 詩를 쓰던 내게 외로운 만큼 詩를 쓰라 하시는 건 너무나 잔인한 일입니다 그대 없는 봄은 꽃이 피어도 향기가 없고 그대 없는 하루하루는 혹한의 겨울입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는 슬픔에 목 놓아 통곡할라 치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다정한 음성 그대, 그대입니다 짙은 어둠이 밀려가고 꿈속에서 부르는 그대 이름 詩가 되었다가 차가운 새벽이슬로 사라집니다 그대 없이 내게 詩는 없습니다 2022. 12. 19. 3. 그해 여름 그해 여름 - 임은숙 휴대폰에 잠자고 있던 이름 하나가 미끈거리는 손가락 끝에서 순식간에 지워질 때 어디선가 천둥소리가 들렸고 놓지 못한 아쉬움은 그 자리에 재로 남았다 한때 나의 연인이었던 너의 뜨거운 눈빛과 아름다운 미소까지 깡그리 날릴 수 있는 그해 여름 나에게 필요한 건 한 자락 바람이었다 2022. 12. 18. 4. 그리움은 잔인한 것 그리움은 잔인한 것 - 임은숙 먼 곳의 너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너를 찾아내는 것이다 더 이상 내 표정을 좌우할 수 없는 너여야만 하는데 지난 기억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어둡고 슬픈 언어들로 가슴을 찢어놓는다 세상 전체를 회색빛으로 물들여놓고 그 속에 나를 가두는 그리움은 참 잔인한 것이다 2022. 12. 16. 5. 그대가 아니라도 그대가 아니라도 - 임은숙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봄바람이 그토록 좋았던 건 그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름 모를 새소리 음악처럼 들리고 꽃잎 안고 흐르는 강물이 그토록 눈부신 것도 그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대가 아니라도 봄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을 노래하기 위해 태어난 새와 얼음 밑에서도 흘러야만 하는 강 그대로가 운명인 것을 예고 없이 왔다가 몇 방울의 눈물을 기어코 거두어가는 붉은 계절의 쓸쓸함도 그대와는 무관한 자연의 섭리인 것을 굳이 그대가 아니라도 세상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을 2022. 12. 15. 6. 추억과 기억 사이 추억과 기억 사이 - 임은숙 사랑한다는 말 그 누구에게 쉬이 건넬 수 없음은 아직도 단 하나의 믿음 안에서 서성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 아닌 소나기와 혹독한 엄동의 추위를 겪으며 수많은 낮과 밤을 반복하면서도 차마 버리지 못하는 긴 세월의 모퉁이마다에 매달린 끈질긴 미련 때문입니다 내리는 어둠 사이로 익숙한 낙엽냄새가 전해지며 나를 닮은 사람 몇몇이 옷깃을 추켜세웁니다 이제 바람이 잠들면 다시 찬비의 계절이겠지요 2022. 12. 14. 7. 다 잊고 살려고 해 다 잊고 살려고 해 - 임은숙 네가 내게 했던 말들과 내가 네게 보였던 미소 그리고 낮과 밤이 엇갈리는 경계에서 무리 지어 몰려다니던 하얀 꿈들과 새벽이슬의 반짝임을 다 잊고 살려고 해 슬프지 않은 가을이 없듯이 아프지 않은 사랑이 있을까마는 떠나고 싶은 계절과 머물고 싶은 사랑 사이에서 두 번 다시 너로 하여 웃지 않고 너로 하여 울지 않을 거야 그 숱한 날들의 회색빛 사연들과 깊어갈수록 아파야만 하는 슬픈 사랑의 줄다리기 이제 다 잊고 살려고 해 2022. 12. 13. 8. 틈새 틈새 - 임은숙 계절 따라 멀어져가는 기억이 있다 두꺼운 노트 속의 깨알 같은 글자들이 희미하게 빛바래어져 가고 싸늘한 커피 한 잔에 그리움마저 차갑게 식어 가는데 일찌감치 필요했던 너와의 간격이 이제야 때를 만난 듯 쉭쉭 바람소리 내뿜으며 틈새를 보인다 그 숱한 날들의 뜨거운 방황 둘 사이의 느슨해진 매듭은 긴 세월 앞에 침묵의 마침표를 원하고 있다 2022. 12. 12. 9. 옛집 옛집 - 임은숙 바람이 기웃거리면 폴싹 먼지를 털며 일어서는 꿈들이 시월의 숲길에 모습을 드러낸다 천 리쯤 걷다보면 잊힐 줄 알았던 작은 뜰에 달빛이 노닐던 옛집이 그립다 다시 만 리쯤 되돌아 걷다보면 닿을 수 있을까? 조그맣다 늘 불평이던 지금은 텅 비어 어둠뿐일 옛집 옛집이 그립다 2022. 12. 11. 이전 1 ··· 3 4 5 6 7 8 9 ···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