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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람이분다네가그립다142

3. 3월의 밤, 눈이 내렸다 3월의 밤, 눈이 내렸다 ​ .............................................. 임은숙 ​ ​ 봄눈이었다 해질녘부터 푸슬푸슬 날리기 시작한 눈에 초저녁 거리는 어느 사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버스 역으로 향하는 15분이 다른 때와 달리 길고 길었다 ​ 털고 털어도 자꾸만 어깨에 내려앉는 눈송이가 반갑지 않았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버스 역을 서성거렸던 것 같다 ​ 이어폰에서 음악이 끊기며 벨소리가 울렸다 눈 내리는 밤거리가 거짓말처럼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 그랬다, 조금 우울했던 것 같다 너의 중심에 서있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고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더 힘들었다 ​ 통화가 끝나고 바보처럼 실실거렸다 사랑을 알고 배려를 알고 참사랑에 임하는 너를 생각.. 2021. 11. 19.
4. 꿈​에서 깨어 다시 꿈으로 꿈​에서 깨어 다시 꿈으로 ​ .............................................................. 임은숙 ​ ​ 몇 겁의 세월이 흐른 것 같이 참으로 오랜만에 그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 어쩌면 서로를 볼 수 없는 메마른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늘 사랑을 확인하며 그리움을 키워왔는지도 모릅니다 ​ 고운 새소리가 축복처럼 들려오는데 그대가 하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같습니다 ​ “시간이 흘러도 변한 것 하나 없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 서로 다른 일상 속에서도 같은 생각 하나의 마음으로 달려온 우리였으니까” ​ 겨울이 가고 봄이 오 듯 자연의 섭리는 그 누구의 힘에 의해 뒤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겨울이 가니 봄이 온 것입니다.. 2021. 11. 12.
5. 한 사람 한 사람 ​ ............................ 임은숙 ​ ​ 세찬 눈보라에 바깥출입을 거부하던 마음이 포근한 3월의 창밖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반란이다 ​ 봄의 이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인 듯 낯설다 아직은 그늘진 곳을 피해 양지쪽으로 에돌아가지만 머지않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고맙기도 할 것이다 ​ 이름도 상큼한 봄이라 했던가 코발트빛 하늘을 쳐다보는데 희미한 입김 몇 가닥이 연기처럼 날린다 그저 날릴 뿐이다, 춥지 않다 이제 더는 겨울이 아님을 어떡하리 ​ 봄 안에서 우리는 꽃이나 잔디 새나 구름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 바람에 실려 오는 화답소리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피어납니다 자랍니다 노래합니다 날아옙니다 ​ 눈빛이 맑아서 좋은 사람 향기라 부.. 2021. 10. 26.
6. 손잡고 가요 손잡고 가요 ​ .............................. 임은숙 ​ ​ 무한한 가능성으로 설렘을 주는 아침입니다 맑은 눈빛의 그대와 마주할 시간을 기다리며 옹근 하루의 여백에 어지럽게 그려질 이름 석 자 떠올립니다 ​ 부옇게 흐린 하늘마저도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아침 가만히 있는 나뭇가지를 춤추게 하는 바람처럼 무심한 나의 일상에 오색의 미소를 그려주는 그대로 하여 행복합니다 ​ 한 두 마디 오고가다 그쳐버릴 대화도 재미있게 이어가는 그대는 달변가이기도 합니다 ​ 한적한 산책길에서, 북적이는 인파속에서 혹은 일하는 시간에도 문득문득 떠올라 지난 수다의 한 토막에 바보처럼 실실 웃곤 합니다 환희로 반짝이는 봄날아침입니다 더 눈부신 햇살을, 더 포근한 바람을 욕심내지 않고 믿음 하나로 소박.. 2021. 10. 16.
7. 가지마! 내 그리움아 가지마! 내 그리움아 ​ ......................................................... 임은숙 ​ ​ 오늘은 뭔가 좀 해야지 하면서 시작한 아침입니다 간밤엔 이런저런 계획들도 세워보았습니다 허나 두 다리는 어제처럼 꼼짝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 천천히 커피 한 잔을 준비합니다 서둘러야지,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지어봅니다 ​ 향이 짙은 커피 한 모금 홀짝입니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 혹시나 하면서 창밖을 기웃거립니다 바람의 기척조차 없이 고요하기만 합니다 ​ 립스틱 자국이 그려진 커피 잔을 한참 들여다봅니다 식어버린 커피를 입속에 털어 넣습니다 뜨거울 때보다 마시기에 훨씬 편하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 파란 하늘에 저 많은 구름송이가 동시에 창으로 .. 2021. 10. 6.
8. 상념의 旅路 상념의 旅路 ​ ............................... 임은숙 ​ ​ 또 다시 가을이 오려나봅니다 식어버린 도시의 거리만큼 당신도 쓸쓸하겠지요? 스치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끔은 소주 한 잔에 텅 빈 거리를 헤매기도 하겠지요 ​ 하얀 입김이 희미하게 보일 만큼 제법 차가운 밤입니다 식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지난 시간을 거슬러 사색의 걸음 옮겨봅니다 ​ 간절하게 원하면 꼭 이루어진다고 믿던 그 시간 안에 아주 말라버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마음조각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 밤하늘에 시선을 던지고 무심코 입술에 갖다 대는 찻잔에 가을의 냄새가 묻어있습니다 ​ 익숙한 듯 낯선 가을이 창을 기웃거립니다 2021. 10. 1.
9. 나는 양치기소년이 아닙니다 나는 양치기소년이 아닙니다 ​ ............................................................... 임은숙 ​ ​ 이솝우화 중의 양치기소년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로 마을사람들과 장난치다가 결국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을 때엔 도와주러 오는 이가 없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 말입니다 ​ 밀려오는 그리움에 주저주저하며 익숙한 번호를 누릅니다 기다리던 목소리가 전해져 오면 짙은 불안의 그림자가 저만치로 물러가고 신호음이 끊길 때면 저도 몰래 긴 한숨이 입가에 달라붙습니다 ​ “그냥 해봤어” “여긴 비가 내려” 불러놓고 적당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 이런 나의 행동이 언젠가는 그대의 무심함을 불러올까 두렵습니다 별일 없겠지, 그냥 해보는 거겠지 .. 2021. 9. 27.
10. 어깨의 존재가치 어깨의 존재가치 ​ ........................................ 임은숙 ​ ​ 이 세상에 내 어깨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도 있음을 미처 몰랐습니다 내가 힘들 때는 누군가의 든든한 어깨를 그토록 갈망하면서도 정작 내 어깨의 존재가치는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 소탈하고 명랑한 그에게는 애초부터 고민이나 우울 따위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언제나 나를 향해 해바라기미소를 짓는 봄 같은 사람이었기에 ​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짙은 어둠속을 방황하는 그를 보게 되었고 그제야 나의 팔이 너무도 짧다는 것을 습관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감싸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나를 보았습니다 ​ 따뜻한 미소 뒤에 감춰진 그늘은 보지도 못하고 작은 서운함에 앵돌아져서 그를 힘들게 하였습니.. 2021. 9. 22.
11. 마음휴게소 마음휴게소 ​ .................................... 임은숙 ​ ​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북적이는 거리가 싫어지고 조용한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밤하늘에 별들과 눈을 맞추며 창을 두드리는 자정의 바람소리 귀에 담습니다 ​ 어쩌면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평온인지도 모릅니다 잎사귀를 털어낸 나뭇가지를 보며 마음바닥에 수북이 깔린 마른 기억들을 떠올립니다 ​ 얼마나 찬란했던가! 얼마나 아팠던가! ​ 아름다움과 서글픔이 교차하는 마음에 어둠이 내리면 멀어져간 그리움을 당겨옵니다 되돌아가고 싶은 간절함보다는 흑백영화의 스크린을 마주한 것 같은 여유로움입니다 커피 한 모금에 잔잔한 감동 하나씩 곁들이며 여기서 잠시 쉬어갈까 합니다 2021. 9. 17.
12. 바람의 기억 바람의 기억 ​ ...................................... 임은숙 ​ ​ 나뭇잎 사이로 흘러드는 아침햇살이 샛노란 숲길을 만들어줍니다 만개한 들꽃 속에서 나의 그림자가 꽃잎인양 흔들리고 있습니다 ​ 갈바람에 묻어있는 슬픔에 눈시울을 붉힙니다 작은 서운함이 커다란 미움 되어 내 안에 생채기를 내고 그 생채기가 다시 무언의 오기로 바뀌어 무거운 침묵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 불안한 몸짓으로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이 숨바꼭질에 서툰 어린아이 같습니다 ​ 여기저기 뒹구는 때 이른 낙엽들과 손등에 곱게 내려앉는 단풍잎 한 장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노랗게 타버린 그리움과 지금은 미움이라 말하는 먼 훗날의 기억이겠지요 ​ 옷깃을 파고드는 한 점 바람에 미처 부르지 못한 사랑노래 곱게 동여매여 .. 2021. 9. 12.
13. 나의 아지트 나의 아지트 ​ ................................ 임은숙 ​ ​ 넓고 화려한 큰집이 부럽지 않습니다 한껏 게으름 피우며 늦잠을 즐길 수 있고 씻지 않은 그릇과 더러워진 양말짝이 구석구석 뒹굴어도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나의 작은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 타인의 눈치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 세상을 향한 두꺼운 가면을 벗어버리고 온갖 스트레스를 먼지처럼 털어 버리고나면 부르는 듯 졸음이 몰려오지요 ​ 창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내 四季의 자장가입니다 빗소리에 찾아드는 진한 외로움과 눈 날리는 날의 하얀 그리움에 때론 펑펑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집니다 ​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면 마음에는 잔잔한 평화가 찾아들지요 천리 밖에서도 작은 창가의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한 나만의 .. 2021. 9. 9.
14. 내 안에 자리하셨으므로 족합니다 내 안에 자리하셨으므로 족합니다 ​ .............................................................................. 임은숙 ​ ​ 당신이 그리운 날 하얀 숲길을 찾았습니다 도심의 거리만큼 바람도 차지 아니한 숲에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제법 귀맛 좋게 들립니다 ​ 푸름을 거쳐 오색의 절정을 향하던 나뭇잎들은 거짓말같이 초라한 모습으로 빈가지에 하나 둘씩 매달려 무언가를 쉼 없이 수군거립니다 ​ 당신생각에 골몰한 나를 흉보는 걸까요? 메마른 낙엽 하나가 내 어깨를 툭 건드리곤 발 아래로 내려앉습니다 언 땅 위에서 하얗게 떨고 있는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 흐른 시간만큼 멀어진 기억이 아니라서 이미 정지된 그리움이 아니라서 어제를 .. 2021.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