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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람이분다네가그립다142

8. 친구가 그립다 친구가 그립다 ​ - 임은숙 ​ ​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마땅히 할 이야기 없고 들려줄 상대가 없다 ​ 지나친 오만과 욕심은 늘 혼자인 공간을 정다운 기억 하나 없이 넓혀놓았고 둘러보아 부를 이름조차 없는 차가운 계절 안에서 첫눈이 내리기 전부터 나는 이미 봄을 갈망하고 있다 ​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아쉬운 풍경들 ​ 봄이 되고 싶다 냇물같이 누군가에게 흐르고 싶다 2022. 11. 10.
9. 꽃의 완성 꽃의 완성 ​ - 임은숙 ​ ​ 꽃의 완성은 피는 것이 아니라 本然의 향기를 남기는 것이다 ​ 어떤 나무에 무슨 이름으로 피건 가장 고운 빛깔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뿌릴 수 있는 適時에 필 일이다 ​ 내일 피어도 될 만큼 인생 길지 않다 ​ 머뭇거리지 말아 눈치 보지 말아 보란 듯이 찬란하게 이제 꽃잎을 터뜨려라 2022. 11. 9.
10. 마음의 크기 마음의 크기 ​ - 임은숙 ​ ​ 세상 그 무엇도 담을 수 있는 우리의 마음이지만 어느 하나도 맘껏 담을 수는 없다 기쁨은 넘치면 밖으로 새고 슬픔은 쌓여서 눈물이 되고 지나친 욕망은 후회를 만들고 ​ 어두운 것과 무거운 것을 버리는 습관 밝은 것과 맑은 것을 채우는 지혜가 필요한 한없이 크지만 무척이나 작은 우리의 마음 ​ 마음에 하늘을 만들자 그 하늘아래 평화의 숲에 바람이 일고 새가 노래한다면 세상과 나 사이에는 푸른 강이 흐르고 꿈은 반짝이는 파도 되어 출렁이겠지 2022. 11. 8.
11. 누군가의 꽃 누군가의 꽃 ​ - 임은숙 ​ ​ 꽃의 이름은 누가 달아주었고 꽃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 내가 꽃이라면 이름은 무엇이며 꽃말은 무엇일까 ​ 향기로 이름을 짓는다면 어떤 향기를 지녔으며 색깔로 꽃말을 만든다면 어떤 색의 꽃일까 ​ 누군가의 가슴에 한 송이 꽃으로 피고 싶은 나는 고귀한 목련일까 순박한 들꽃일까 ​ 누군가에게 향기로 다가서고 싶은 나의 이름은 무엇이며 꽃말은 무엇일까 2022. 11. 7.
12. 이방인 이방인 ​ - 임은숙 ​ ​ 계절 따라 피는 꽃들과 나뭇잎 사이 노래하는 새들과 해질녘 붉은 노을과 밤하늘에만 존재하는 별 ​ 모든 것이 하나같이 낯설어서 소경이 되고 귀머거리가 됩니다 ​ 구름이 크든 작든 그 속엔 빗물이 고이는 법 사랑의 깊이와 눈물의 무게 또한 정비례된다는 사실 모르고 살았습니다 ​ 푸른 계절에 이토록 눈시울이 젖어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 안개꽃같이 여린 슬픔 사이로 또 한 계절이 가고 있습니다 2022. 11. 5.
13. 꽃처럼 지고 싶다 꽃처럼 지고 싶다 ​ - 임은숙 ​ ​ 만약 떠날 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춘하추동 사계절 중에 봄을, 봄 중에도 삼사월이 아닌 오월쯤이면 좋겠다 ​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꽃처럼 피고 꽃처럼 지고 싶다 ​ 새벽이슬의 눈물 한 방울이면 충분하다 다정한 바람의 손길에 졸린 듯 눈을 감는 향기를 남기고 떠나는 봄꽃이고 싶다 2022. 11. 4.
14. 풀 풀 ​ - 임은숙 ​ ​ 사람들은 나를 풀이라 부른다 꽃이 아닌 풀이라 부른다 ​ 흔한 모양새에 향기라 할 것도 없는 그냥 풋풋한 냄새 어쩌면 풀이라 불리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 풀이라 불린 세월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제 이름도 까맣게 잊은 채 풀의 삶을 산다 ​ 꽃이면 어떻고 풀인들 어떠리 어차피 때 되면 시드는 법 ​ 눈부신 태양 아래 바람과의 담소로 아름다운 날들이 내겐 행복이다 ​ 풀이라 불리며 꽃이 아닌 풀이라 불리며 오늘을 사는 나는 풀이다 2022. 11. 3.
15. 8월 8월 ​ - 임은숙 ​ ​ 한 뼘 멀어진 구름에 사색이 깊어지네 ​ 더 이상 푸를 수 없는 나무이파리들이 가끔 처진 몸을 일으키는데 소나기에 대한 간절함은 옛사랑처럼 간 곳 없네 ​ 계절은 분명 여름인데 성질 급한 나그네인가 나는 이미 가을 속에 서있네 ​ 오는지 가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바람처럼 내일을 만나고 어제를 거닐고 다시 오늘을 가네 2022. 11. 3.
16. 중년의 그대에게 중년의 그대에게 ​ - 임은숙 ​ ​ 잠 못 이루던 그대의 어느 새벽에 대하여 멀어져간 그대의 어느 가을에 대하여 나는 아는 것이 없네 ​ 푸릇하던 그대의 젊은 날에 대하여 뜨겁게 타오르던 그대의 사랑에 대하여 나 또한 아는 것이 없네 ​ 하지만 새소리 맑은 숲길에 그대가 흘린 긴 한숨과 반백의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체념의 눈빛은 분명 듣고 보았네 ​ 그대 눈빛이 말하네 물처럼 흐르는 거라고, 돌아오지 않는 거라고 우리네 인생 그런 거라고 ​ 그대 눈빛이 말하네 곧게 가라고 뒤돌아보지 말라고 그렇게 사는 거라고 2022. 11. 2.
17. 나뭇잎이 지고 있다 나뭇잎이 지고 있다 ​ - 임은숙 ​ ​ 나뭇잎이 지고 있다 바람을 탓하지 마라 ​ 눈부신 화려함도 잠시 뿐 세상 모든 것 예고 없이 그렇게 가는 거다 ​ 가을 숲이 비고 있다 계절을 탓하지 마라 ​ 이지러졌다 둥글어지고 비워야 채워지는 법 ​ 새벽에서 해질녘까지 해질녘에서 자정까지 쉬지 않고 나뭇잎이 지고 있다 2022. 10. 30.
18. 가을無情 가을無情 ​ - 임은숙 ​ ​ 마른 잎 수두룩이 긁어모아 활활 태워 고운 詩로 날리고 싶은데 ​ 미처 종이에 옮기지 못한 설익은 詩香 바람 따라 날아 날아가고 ​ 거리 곳곳에 흩날리는 게으른 詩心들 늦가을 오후해살에 아우성이다 ​ 벌써 가을은 가는가? ​ 어디선가 익숙한 바람소리 나를 부르는데 정녕 가을은 떠난단 말인가? 2022. 10. 27.
19. 늦가을서정 늦가을서정 ​ - 임은숙 ​ ​ 바람의 오래된 장난 끝이 없다 ​ 짧은 오후 햇살아래 어수선한 차림의 사람들이 거리에 낙엽처럼 뒹굴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휘청이는 허무 내지는 한숨 ​ 잡을 수 없는 어제와 놓아야만 하는 현실의 무게 고스란히 계절에 묻혀버리고 ​ 떠나는 자 보내는 자 모두가 빈손이다 2022.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