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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람이분다네가그립다142

13. 식은 찻잔 사이로 식은 찻잔 사이로 ​ - 임은숙 ​ ​ 창을 두드리는 작은 빗방울소리에도 가슴이 뛰었다 내 안에 너로 가득 차있을 때 ​ 그리고 여기 마주하고도 담담한 심장 하나 있다 나뭇잎 사이 눈부신 햇살에도 가슴이 반응하지 않는 내 안에 너의 자리가 없는 지금 ​ 식은 찻잔 사이로 긴 침묵만이 향기처럼 흐르는데 ​ 오늘밤은 어떤 책을 읽을까 잠시 딴 생각을 한다 2022. 12. 7.
14. 착각입니다 착각입니다 ​ - 임은숙 ​ ​ 빗물의 간절한 사연 알지도 못하면서 바람의 마지막 행선지 어딘지도 모르면서 등 돌리는 이의 지독한 아픔도 모르면서 빗물은 슬프다 바람은 자유롭다 이별은 차갑다 멋대로 단정 짓는 이들 ​ 때로는 빗물도 다정한 속삭임입니다 차마 멈출 수 없는 바람의 안타까운 몸부림입니다 이별 뒤에 남는 건 가장 뜨거운 기억입니다 2022. 12. 6.
15. 가을 숲에서 가을 숲에서 ​ - 임은숙 ​ ​ 방향을 가늠키 어려워라 사면이 노을빛이다 ​ 여기저기서 우수수 날 부르는 소리 가을의 숲은 곳곳에 너를 숨기고 있다 ​ 와버린 기억은 밀어낸다고 가지 않고 외딴 벤치에 어둠이 내린지도 이슥하건만 날 부르는 다정한 음성 그치지 않더라 ​ 날리는 기억에 설음은 한 가득인데 종내 드러나지 않는 너의 모습은 어느 하늘아래 찬바람 속을 서성일까 2022. 12. 5.
16. 낭만이 사라지고 낭만이 사라지고 ​ - 임은숙 ​ ​ 꽃이 피어 반갑지 않고 노을 속에 단풍이 슬프지 않다 ​ 비 오는 거리를 우산 없이 헤매는 일이 없고 하얀 첫눈송이에 마음 설레지 않는다 ​ 흐르는 구름에 발목 잡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일도 없고 부르고 싶은 이름 하나 떠오르지 않으니 커피 한 잔에 섞을 한숨조차 남아있지 않다 ​ 짧은 밤 눈까풀은 천근만근인데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 싱거운 자장가다 ​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아침이 있고 보내지 않아도 가버리는 하루가 있다 2022. 12. 3.
17. 자정의 비애 자정의 비애 ​ - 임은숙 ​ ​ 어디서 오는가 가슴 벽에 맞혀오는 너의 숨소리 ​ 작은 기척에 깨질 것 같은 고요 ​ 참지 못해 참을 수 없어 터뜨리는 오열 ​ 이 밤이 새도록 멈추지 않을 눈물은 얼마큼 깊은 바다를 이룰까 이 밤이 새도록 잠들지 않을 그리움은 얼마큼 투명한 새벽이슬로 태어날까 ​ 닿을 듯 멀리 있는 너의 이름 앞에 빛을 잃은 하나의 별로 뜨겁게 울 준비가 되어 있다 2022. 12. 2.
18. 새벽일기 새벽일기 ​ - 임은숙 ​ ​ 새벽 한시 먼 기억에 생각을 매달고 미적지근한 커피를 홀짝인다 ​ 새벽 두시 반 잠자던 바람이 눈을 뜨고 방안을 기웃거린다 오지 않을 것 같던 겨울도 많이 깊어져 지난 것은 놓아주라고 자꾸만 눈을 퍼붓는다 ​ 새벽 세시 반 아직은 너무 이른 시간이다 눈 좀 붙여야겠다 ​ 새벽 네 시 비어있던 머릿속이 가득 찬다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커피를 탄다 ​ 아침 다섯 시 반 먼 기억에 생각을 매달고 미적지근한 커피를 홀짝인다 2022. 12. 1.
19. 가을 그림자 가을 그림자 ​ - 임은숙 ​ ​ 가을이 오면 그대도 묻어왔었지 ​ 짙어진 계절 빛에 문득 떠오른 모습 보이지 않아 서운함에 창을 여니 스산한 바람에 낙엽들만 부스스 눈을 뜨네 ​ 붉은 계절에 앓는 병 어느 사이 완치 되었나 메마른 마음의 뜰에는 더 이상 사무침이 없네 ​ 가을은 오고 그대는 없고 ​ 창밖엔 시월이 울고 있네 2022. 11. 30.
20. 기억의 채널 기억의 채널 ​ - 임은숙 ​ ​ 꽃잎만 날리는 게 아니다 내리는 것 모두가 빗물만은 아니다 ​ 찬바람 가슴 깊이 파고드는 날 오만가지 상념 밤하늘을 배회하고 어느 사이 마음에 내려앉는 슬픔 한 자락 ​ 젖은 바람에 매달리는 흐느낌소리 예고 없이 스며드는 빛바랜 기억들 ​ 지나고 보면 아픔조차도 그리움인 것을 ​ 강물만 흐르는 게 아니다 계절만 오가는 게 아니다 2022. 11. 28.
21. 계절의 미아 계절의 미아 ​ - 임은숙 ​ ​ 바람이 분다 분분히 흩어지는 낙엽들처럼 이제 서로에게 안녕을 고할 때 ​ 돌아보아 아름답지 않은 것 있을까마는 유난히 빛나는 기억 하나에 발목이 잡혀 온갖 흐름을 잊은 미아가 된다 ​ 메마른 상념의 길로 문득문득 솟구치는 이름 모를 충동 ​ 세월의 바람 앞에 고스란히 식어가는 한때의 뜨거움이 잔잔한 마음에 수시로 파문을 일으키는데 ​ 가을을 담기에 아직은 이른 마음의 푸른 숲엔 여전히 네가 있고 내가 있고 꽃이 피고 새가 울고 2022. 11. 27.
22. 그 가을의 기억 그 가을의 기억 ​ - 임은숙 ​ ​ 빛을 잃은 이파리 왠지 나를 닮았다 ​ 적막과 고독 그 사이에서 침묵을 고집케 하는 부산을 떨며 왔다가 슬며시 가버리는 계절 ​ 너에게서 떨어질 때 귓가를 스치던 바람소리 기억에 생생하다 ​ 긴 밤의 끝을 잡고 낯선 여명 속으로 나를 던지며 새파랗게 비명을 터뜨리는 여기 내가 있다 ​ 그리고 떠난 듯 머물러있는 네가 있다 2022. 11. 26.
23. 다시 아침이 오면 다시 아침이 오면 ​ - 임은숙 ​ ​ 멀어져간 나의 아침과 그토록 뜨겁던 우리의 정오 서서히 기우는 태양아래 바람마저 차갑다 ​ 이제, 드물게 자리한 별들이 노인네같이 밤하늘을 서성일 때 서로의 깊이에서 그대와 나는 추억을 건지리라 ​ 흩어져 쌓이는 낙엽들이며 하얗게 날리는 눈꽃들이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초록에 묻히겠지 ​ 짙은 어둠이 여명으로 이어지는 순간 다시, 뜨거운 커피 향을 즐기며 무거운 기억 쉬이 내려놓겠지 2022. 11. 25.
24. 꽃샘바람 꽃샘바람 ​ - 임은숙 ​ ​ 잊지 않고 찾아드는 고즈넉한 저녁처럼 흐른 세월만큼 익어서 찾아오는 기억이 있다 ​ 멀어져간 아쉬움 사이로 얼핏 스치는 그리움 하나 ​ 봄이 오고 꽃은 피는데 마음엔 바람이 인다 ​ 선뜻 입술을 대지 못하는 커피 한 잔이 지독한 그리움이라는 걸 나직이 불러오는 이름 하나가 되돌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걸 ​ 저기 넘치는 햇살아래 꽃처럼 피고 싶은데 농익은 기억 하나 통째로 봄을 흔든다 2022.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