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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람이분다네가그립다142

20. 꼭두각시 인생 꼭두각시 인생 ​ - 임은숙 ​ ​ 곧게 가라기에 에돌며 헤매지 않았고 욕심을 버리라기에 손에 쥐어진 것조차도 망설임 없이 놓아버렸다 ​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니 희미한 발자국마저 남아있지 않다 ​ 나무그늘에 앉아 나는 새들의 날갯짓이라도 흉내 내볼 걸 봄 한철 여러 꽃의 향기라도 알아둘 걸 ​ 텅 빈 손에 텅 빈 속에 텅 빈 머리 내 것이 없다 ​ 곧게 가란다고 욕심을 버리란다고 무심히 흘려보낸 세월 그렇다할 아픔 한 조각마저 내게는 없다 2022. 10. 25.
21. 건망증 건망증 ​ -임은숙 ​ ​ 이제 세월을 잊고 싶다 ​ 희미하게 빛바랜 오래 전의 모습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고 싶다 ​ 한 번쯤 해봐야지 했던 일들과 꼭 해보고 싶던 일들을 젊음의 여백에 하나둘 모아두며 자신을 위한 것도 타인을 위한 것도 아닌 하루하루를 버릇처럼 탕진했다 ​ 짙어가는 가을빛에 멋대로 내 안에 떨어져 쌓이는 낙엽들을 세며 때로는 모든 흐름을 잊고 간헐적 건망증을 앓고 싶다 2022. 10. 24.
22. 마흔 일여덟 마흔 일여덟 ​ - 임은숙 ​ ​ 늘 오가던 길도 아주 가끔만 걸었으면 좋겠고 꽃바람의 푸른 손짓에도 누군가의 뜨거운 눈길에도 가슴이 뛰지 않는다 ​ 소나기보다는 보슬비가 좋은 내 나이 마흔 하고도 일여덟 ​ 시린 하늘 아래로 투명한 그리움이 밀려오던 시절 노란 해바라기로 서있던 정열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높지도 낮지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함이 마냥 편하다 ​ 창가로 내려앉은 오후햇살에 춘곤증이 몰려오고 낡은 트로트의 볼륨을 키우는 손끝에 바람처럼 일어서는 기억이 멀어서 뜨겁다 2022. 10. 22.
23. 위로 위로 ​ -임은숙 ​ ​ 춥다는 내게 따뜻함을 느껴보라네 ​ 힘들다는 내게 기운을 내라 하네 ​ 슬프다는 내게 웃으라네, 활짝 웃으라네 ​ 숨 쉬기조차 귀찮다는 내게 이것저것 시도해보라네 ​ 약효가 전혀 없는 감기약 같은 말들 허공을 맴도는 바람 같은 위로 ​ 차라리 손이나 잡아줄 거지 어깨라도 내어줄 거지 2022. 10. 21.
24. 12월에는 12월에는 ​ - 임은숙 ​ ​ 어차피 잡을 수도 없는 걸 ​ 12월에는 이별 아닌 만남을 얘기하자 ​ 차라리 남아있는 것들에 나를 얹어 아쉬움 아닌 희망을 얘기하자 ​ 행여 아직도 무거운 미련 남아있다면 우리 다음을 기약하자 ​ 가서 오지 않는 세월이라지만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은 없으니까 ​ 순백의 12월에는 끝이 아닌 시작을 얘기하자 2022. 10. 20.
25. 12월 31일 12월 31일 ​ - 임은숙 ​ ​ 아침의 꿈들이 사정없이 부서지는 저물녘 이루지 못한 것들에 미련을 매달고 바람처럼 거리를 헤맨다 ​ 오가는 사람들 중에 익숙한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외딴 곳 바람벽에 흔들리는 냉소 발목을 잡는다 ​ 누가 나를 향해 손을 젓는가 간다는 손짓인가 오라는 손짓인가 ​ 누가 나를 부르는가 찬바람 속에서 쉬지 않고 누가 나를 부르는가 2022. 10. 19.
26. 송년 송년 ​ ...................... 임은숙 ​ ​ 괜히 서글퍼지고 연거퍼 한숨이 나오고 잇닿은 허무에 안주 없는 술잔을 기울이고 꺼이꺼이 울지 못해 가느다랗게 흐느끼고 작고 초라해진 자신에게 원치도 않는 나이 하나 선물하며 세월무상의 합병증을 앓는다 2022. 10. 10.
27. 겨울은 밤이 길다 겨울은 밤이 길다 ​ .................................... 임은숙 ​ ​ 약속 없이 찾아주는 친구가 반가운 계절이다 ​ 독한 소주도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맥주도 다 괜찮다 멀어져간 기억을 안주 삼아 마냥 다정한 시간 ​ 어둠 내린 거리에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질 즈음 둥글어가는 이야기 구수하더라 ​ 흘러간 시간을 탓하지 않고 모아둔 이야기보따리 푸는 기쁨에 눈가의 잔주름 깊어지더라 ​ 세월이 무정타 하였느냐 이제 비로소 보이는 인생인 것을 ​ 문 두드리는 소리가 기다려지는 12월의 밤이다 2022. 10. 8.
28. 嘆하며 嘆하며 ​ .......................... 임은숙 ​ ​ 내 부족함을 嘆하며 그럼에도 여직 각성하지 못함을 더불어 嘆하며 타인의 넘쳐 남을 시기하는 옹졸함을 嘆하며 그럼에도 쉬이 내려놓지 못하는 내 소심을 더불어 嘆하며 궂은비를 嘆하며 그럼에도 맑은 날 화사하게 웃어본 적이 없음을 더불어 嘆하며 어둠을 嘆하며 그럼에도 밝은 날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준 적이 없음을 더불어 嘆하며 가는 세월을 嘆하며 그럼에도 잡지 못하는 어제 같은 오늘을 더불어 嘆하며 춘하추동 계절 사이를 바람처럼 누빈다 2022. 10. 7.
[다섯] 당신을 만날 것 같은 예감에... [다섯] ========== ​ ​ 잠깐의 침묵을 가르며 그대가 말했습니다 “당신을 만날 것 같은 예감에...” 찬비에 생기를 되찾은 낙엽들이 수런거리는 거리에서 우연히 그대를 만났습니다 - 임은숙 2022. 10. 6.
1. 재회 재회 ​ ............... 임은숙 ​ ​ 겨울비가 내립니다 차창너머 밤거리는 차가움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안겨옵니다 군데군데 쌓여있는 흰 눈과 오색의 네온사인불빛과 오고 가는 차량들의 전조등은 몸으로 느끼기보다 시야에 담기에 더욱 근사한 풍경입니다 ​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구나! 확신이 드는 순간에도 차가운 뺨 위로 흐르는 뜨거운 것을 애써 참아온 그리움이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내겐 아직도 긴 만남을 위한 짧은 머뭇거림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 좀 전에 마주했던 당신을 떠올립니다 보고 싶다는 말에 저도 몰래 “나도…”라는 말이 튀어나갔지요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오기라도 한 듯 말입니다 ​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서둘러 변명을 시도하였으나 조용한 당신의 미소에 부딪쳐 뒷말을 삼켜야 했.. 2021. 12. 1.
2. 그대 행복한가요 그대 행복한가요 ​ ............................... 임은숙 ​ ​ 문득 그대가 떠오릅니다 시간이 흐른 만큼 그대도 많이 변해있을까요? ​ 그대가 불러준 노래를 듣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슴 설레게 하는 목소리 따라서 흥얼거리며 옛 시간 속을 거닙니다 ​ 한 순간도 놓지 않던 그리움이 희미해지고 이렇게 가끔, 아주 가끔씩만 떠오르는 걸 보면 세월은 약이 맞긴 하나 봅니다 ​ 통화 목소리만으로도 마냥 설레고 좋았던 우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었던 다정한 얘기들을 하나 둘 기억해내는데 어느 사이 뜨거운 것이 볼을 적시고 있습니다 ​ 출퇴근시간마저 아쉬워 한겨울에도 시린 손으로 문자를 주고받던 우리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 커피 한 잔 어때? 시각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행복하던 .. 2021.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