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바람이분다네가그립다142 15. 晩秋 晩秋 ................ 임은숙 계절이 짙어가고 있습니다 긴 침묵의 시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낙엽이 눈처럼 쌓인 오색풍경입니다 걸음마다 뚝뚝 떨어지는 사무침이 사라진지 오래된 마음에 돌멩이라도 던져 파문을 일으켜야 할 때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비례되는 무심함이 편하다가 불안하다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미워집니다 가을이 닿은 길목마다 새록새록 돋아나는 추억이 그리운 시간입니다 가을이라 불렀던 그대 하늘이라 불렀던 그대 바람이라 불렀던 그대 멀어져간 따스한 언어들을 애써 들춰내는데 절정으로 치닫는 단풍 숲에 하나 둘 일어서는 기억이 새롭습니다 2021. 9. 4. 16. 추억이라는 꽃을 아십니까 추억이라는 꽃을 아십니까 ........................................................ 임은숙 춘하추동 삼백 예순 닷새를 서로의 가슴에 고스란히 스며든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지 아니한가? 내 생의 한 부분을 따뜻한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그립고 아쉬워서 종내는 몇 방울의 눈물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마력의 기억이라는 것 서로의 시간 속에 함께 흐르던 사연들은 세월 따라 붉게 익어서 다시 꽃으로 핀다 흔들리며 피는 꽃이 사랑이라면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 추억이다 바람결에 묻어온 향기 시리고 달콤한 나의 밤이 이어질 것이다 2021. 9. 1. 17. “춥다”고 말할 수 있는 겨울이 좋다 “춥다”고 말할 수 있는 겨울이 좋다 ............................................................................... 임은숙 두리번거리며 슬며시 옷깃을 여미던 가을이 가고 두터운 겉옷 속에 머리를 마구 들이밀어도 괜찮을 겨울이 왔다 타인의 눈과 귀를 의식하여 내뱉지 못하던 “춥다”는 말을 망설임 없이 언제 어디서나 입 밖에 낼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겨울이니까! 그들은 나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의 시린 사연을 모를 것이다 언제부터 내 마음 깊이에 찬바람은 찾아왔을까? 알 수 없는 질문을 허공에 던지며 “춥다”고,“울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춥다”는 이유만으로 멀어져간 옛 친구의 이름을 떠나간 사랑을 들먹이며 마음껏.. 2021. 8. 30. 18. 그대도 뜨거운 커피를 식혀서 마십니까 그대도 뜨거운 커피를 식혀서 마십니까 ............................................................................... 임은숙 마시기 위해 커피를 탄 것이 아닙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그대 빈자리에 그날 같은 커피를 놓게 만든 겁니다 살다보니 웬만한 일에는 감동 따위를 느끼지 못한지가 오래 되지만 먼 그대 생각이 불쑥불쑥 떠오를 때면 가슴은 흥건한 눈물바다를 이룹니다 늦가을 차가운 강변을 맨발로 걷는 것처럼 마음의 두어 평 평온의 공간이 온통 시린 통증으로 가득 찹니다 그리움 같은 커피! 그 시절 우리는 서로를 위해 수없이 커피를 탔습니다 마시고나면 사랑이 줄어들 것 같아 차마 마시지도 못하면서 자꾸만 커피를 탔습니다 .. 2021. 8. 28. 19. 그리움은 흘러가고 흘러오고 그리움은 흘러가고 흘러오고 ................................................................ 임은숙 간절히 그대를 부른다 하여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나의 전부를 내주었던 한 사람이 궁금하여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대를 불러봅니다 그대 눈빛이 변함없이 따스하다 하여 그대 마음도 옛 시절에 머물러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던 한 사람이 떠올라서 추억의 뒤안길을 거닙니다 푸른 하늘 어딘가에 하얗게 뭉쳐있는 추억 한 자락 언젠가는 뜨거운 비가 되어 사정없이 퍼붓겠지만 깡그리 비우지 못하고 다시 뭉쳐버릴 기억이라서 세상 끝까지 그것을 안고 가야 합니다 바람이 붑니다 봄이 옵니다 발끝에 차이는 작은 돌멩이 .. 2021. 8. 27. 20. 그대 가득한 풍경 그대 가득한 풍경 .......................................... 임은숙 어느 하나를 훌쩍 뛰어넘어 원하는 계절로 갈 수 없는 자연의 섭리처럼 원치 않아도 꼭 거쳐야만 하는 삶의 순서일까? 이유 없는 슬픔과 불안을 내 것처럼 받아 안으며 어스름이 내리는 우중충한 거리를 무작정 헤맸다 굵직한 빗방울이 떨어지자 행인들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신호등의 배경이 잿빛이었구나 생각하면서 너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연스레 그려지는 눈과 코 그리고 강인한 턱… 늘 그랬다 너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습관처럼 너를 떠올리곤 했다 새순이 돋는 연초록의 나뭇가지를 보거나 이름 모를 작은 들꽃을 마주할 때 신발에 밟히는 때 이른 낙엽을 보거나 눈보라 속으로 추워 보이는 연인.. 2021. 8. 25. 21. 만남의 때를 놓친 것 같습니다 만남의 때를 놓친 것 같습니다 ................................................................... 임은숙 지금에 와서 우리가 만난다면 어떤 풍경 속에 서있을까요? 수없이 나눈 얘기와 수없이 나눈 눈빛과 더 이상 익숙해질 수 없는 서로의 목소리와 그리움과 외로움과 미움과 한숨 함께 한 모든 것들은 아득히 산처럼 쌓여 더 이상 키를 늘릴 수가 없는데 지금에 와서 우리가 만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요? 낙엽 지는 거리를 거닐며 조금도 새로울 것 없는 지난 가을얘기를 반복하고 귀에 익은 음악 한 소절에 함께 부르던 노래를 버릇처럼 흥얼거리겠지요 그대와 나 사이에 너무나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꿈속에서만 잡던 그대의 손을 현실에서 잡는다는 .. 2021. 8. 24. 22. 感性과 理性의 갈림길에서 感性과 理性의 갈림길에서 ......................................................... 임은숙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아지고 메마름과는 차원이 다른 서먹함이 너와 나 사이에 슬픈 음악처럼 흐르고 돌아가고 싶으나 돌아가지 못할 어제는 더 이상 아쉬움과 한숨이 아니었다 잠시 쉼표를 찍는다 어쩌면 마침표가 될지도 모를 쉼표를 찍는다 시종일관 굳게 믿어온 나의 감정이라서 지금의 내 모습이 낯설고 적응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모든 걸 변하게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시간에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문득 뇌리를 치는 생각 그렇다!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예전 같은 간절함으로 너를 부르기에는 흐른 시간만큼이나 내가 지쳐있었고 다시 긴 터.. 2021. 8. 23. 23. 나의 봄은 그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나의 봄은 그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 임은숙 꽃잎이 흩날립니다 다시 꽃의 계절입니다 은은한 바람결에 묻어온 기억에 전혀 가슴이 뛰지 않습니다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이 허허로움이 정녕 나의 것이란 말입니까? 언제까지고 변함없을 줄 알았습니다 언제나 같은 크기로 그대는 내 안에 자리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간과 더불어 흐르는 어쩔 수 없는 마음은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해질녘 강변에서, 비 오는 거리에서 그대 이름 수백 번 불러보아도 모습만 희미하게 떠오를 뿐 예전의 사무침은 없었습니다 어느 사이 그리움은 허옇게 빛바래지고 세월은 영원의.. 2021. 8. 23. 24. 평생 知己 평생 知己 ................................ 임은숙 가장 뜨거웠던 시절 그대와 나는 10년 뒤의 우리 모습을 수없이 상상했습니다 꽃이 피고 눈이 내리고 우리만의 계절 가을엔 어김없이 낙엽이 날리고 시간은 흐름을 잊지 않았고 우리는 묵묵히 시간 뒤를 따랐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습니다 따뜻한 밥상을 사이 두고 오순도순 밥을 먹고 손잡고 강변을 산책하는 둘의 모습은 여전히 꿈속에만 존재합니다 그렇습니다! 10년 전 우리의 소박한 꿈은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어는 단 한 번의 만남도 가져보지 못한 채… 세월 따라 사무침은 어느덧 무덤덤해지고 가끔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바보처럼 웃곤 합니다 서로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할 수 있고 함께 둘만의 기억을 .. 2021. 8. 22. 이전 1 ··· 9 10 11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