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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네가그립다149

14. 풀 풀 ​ - 임은숙 ​ ​ 사람들은 나를 풀이라 부른다 꽃이 아닌 풀이라 부른다 ​ 흔한 모양새에 향기라 할 것도 없는 그냥 풋풋한 냄새 어쩌면 풀이라 불리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 풀이라 불린 세월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제 이름도 까맣게 잊은 채 풀의 삶을 산다 ​ 꽃이면 어떻고 풀인들 어떠리 어차피 때 되면 시드는 법 ​ 눈부신 태양 아래 바람과의 담소로 아름다운 날들이 내겐 행복이다 ​ 풀이라 불리며 꽃이 아닌 풀이라 불리며 오늘을 사는 나는 풀이다 2022. 11. 3.
15. 8월 8월 ​ - 임은숙 ​ ​ 한 뼘 멀어진 구름에 사색이 깊어지네 ​ 더 이상 푸를 수 없는 나무이파리들이 가끔 처진 몸을 일으키는데 소나기에 대한 간절함은 옛사랑처럼 간 곳 없네 ​ 계절은 분명 여름인데 성질 급한 나그네인가 나는 이미 가을 속에 서있네 ​ 오는지 가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바람처럼 내일을 만나고 어제를 거닐고 다시 오늘을 가네 2022. 11. 3.
16. 중년의 그대에게 중년의 그대에게 ​ - 임은숙 ​ ​ 잠 못 이루던 그대의 어느 새벽에 대하여 멀어져간 그대의 어느 가을에 대하여 나는 아는 것이 없네 ​ 푸릇하던 그대의 젊은 날에 대하여 뜨겁게 타오르던 그대의 사랑에 대하여 나 또한 아는 것이 없네 ​ 하지만 새소리 맑은 숲길에 그대가 흘린 긴 한숨과 반백의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체념의 눈빛은 분명 듣고 보았네 ​ 그대 눈빛이 말하네 물처럼 흐르는 거라고, 돌아오지 않는 거라고 우리네 인생 그런 거라고 ​ 그대 눈빛이 말하네 곧게 가라고 뒤돌아보지 말라고 그렇게 사는 거라고 2022. 11. 2.
[메모] 추억이 따뜻하다 2022. 11. 1.
17. 나뭇잎이 지고 있다 나뭇잎이 지고 있다 ​ - 임은숙 ​ ​ 나뭇잎이 지고 있다 바람을 탓하지 마라 ​ 눈부신 화려함도 잠시 뿐 세상 모든 것 예고 없이 그렇게 가는 거다 ​ 가을 숲이 비고 있다 계절을 탓하지 마라 ​ 이지러졌다 둥글어지고 비워야 채워지는 법 ​ 새벽에서 해질녘까지 해질녘에서 자정까지 쉬지 않고 나뭇잎이 지고 있다 2022. 10. 30.
[부르기] 빗속을 둘이서 빗속을 둘이서 수ㄱi 부릅니다 너의 맘 깊은 곳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고개 들어 나를 보고 살며시 얘기하렴 정녕 말을 못하리라 마음 깊이 새겼다면 오고 가는 눈빛으로 나에게 전해주렴 이 빗속을 걸어갈까요 둘이서 말없이 갈까요 아무도 없는 여기서 저 돌담 끝까지 다정스런 너와 내가 손잡고 나나나나 나나 나나 나나나 이 빗속을 걸어갈까요 둘이서 말없이 갈까요 아무도 없는 여기서 저 돌담 끝까지 다정스런 너와 내가 손잡고 나나나나 나나 나나 나나나 2022. 10. 28.
18. 가을無情 가을無情 ​ - 임은숙 ​ ​ 마른 잎 수두룩이 긁어모아 활활 태워 고운 詩로 날리고 싶은데 ​ 미처 종이에 옮기지 못한 설익은 詩香 바람 따라 날아 날아가고 ​ 거리 곳곳에 흩날리는 게으른 詩心들 늦가을 오후해살에 아우성이다 ​ 벌써 가을은 가는가? ​ 어디선가 익숙한 바람소리 나를 부르는데 정녕 가을은 떠난단 말인가? 2022. 10. 27.
19. 늦가을서정 늦가을서정 ​ - 임은숙 ​ ​ 바람의 오래된 장난 끝이 없다 ​ 짧은 오후 햇살아래 어수선한 차림의 사람들이 거리에 낙엽처럼 뒹굴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휘청이는 허무 내지는 한숨 ​ 잡을 수 없는 어제와 놓아야만 하는 현실의 무게 고스란히 계절에 묻혀버리고 ​ 떠나는 자 보내는 자 모두가 빈손이다 2022. 10. 26.
[부르기] 허무한 마음 허무한 마음 수ㄱi 부릅니다 마른 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던 지난 가을날 사무치는 그리움만 남겨놓고 가버린 사람 다시 또 쓸쓸히 낙엽은 지고 찬서리 기러기 울며 나는데 돌아온단 그 사람은 소식 없어 허무한 마음 다시 또 쓸쓸히 낙엽은 지고 찬서리 기러기 울며 나는데 돌아온단 그 사람은 소식 없어 허무한 마음 2022. 10. 25.
20. 꼭두각시 인생 꼭두각시 인생 ​ - 임은숙 ​ ​ 곧게 가라기에 에돌며 헤매지 않았고 욕심을 버리라기에 손에 쥐어진 것조차도 망설임 없이 놓아버렸다 ​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니 희미한 발자국마저 남아있지 않다 ​ 나무그늘에 앉아 나는 새들의 날갯짓이라도 흉내 내볼 걸 봄 한철 여러 꽃의 향기라도 알아둘 걸 ​ 텅 빈 손에 텅 빈 속에 텅 빈 머리 내 것이 없다 ​ 곧게 가란다고 욕심을 버리란다고 무심히 흘려보낸 세월 그렇다할 아픔 한 조각마저 내게는 없다 2022. 10. 25.
21. 건망증 건망증 ​ -임은숙 ​ ​ 이제 세월을 잊고 싶다 ​ 희미하게 빛바랜 오래 전의 모습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고 싶다 ​ 한 번쯤 해봐야지 했던 일들과 꼭 해보고 싶던 일들을 젊음의 여백에 하나둘 모아두며 자신을 위한 것도 타인을 위한 것도 아닌 하루하루를 버릇처럼 탕진했다 ​ 짙어가는 가을빛에 멋대로 내 안에 떨어져 쌓이는 낙엽들을 세며 때로는 모든 흐름을 잊고 간헐적 건망증을 앓고 싶다 2022. 10. 24.
22. 마흔 일여덟 마흔 일여덟 ​ - 임은숙 ​ ​ 늘 오가던 길도 아주 가끔만 걸었으면 좋겠고 꽃바람의 푸른 손짓에도 누군가의 뜨거운 눈길에도 가슴이 뛰지 않는다 ​ 소나기보다는 보슬비가 좋은 내 나이 마흔 하고도 일여덟 ​ 시린 하늘 아래로 투명한 그리움이 밀려오던 시절 노란 해바라기로 서있던 정열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높지도 낮지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함이 마냥 편하다 ​ 창가로 내려앉은 오후햇살에 춘곤증이 몰려오고 낡은 트로트의 볼륨을 키우는 손끝에 바람처럼 일어서는 기억이 멀어서 뜨겁다 2022.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