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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숙807

[시] 회자정리會者定離 회자정리會者定離 - 임은숙 짙은 슬픔이 내리는 해질녘 거리 온통 눈물입니다 낯선 겨울새의 옹알거림이 바야흐로 내려앉을 어둠 속의 나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더 이상 부르지 마십시오 이름만으로도 가슴 저미는 이별입니다 익숙한 도시의 낯선 창공에 부옇게 흩어지는 긴 한숨 會者定離의 인생섭리 무겁게 껴안습니다 2024. 2. 25.
[시] 하얀 공백 하얀 공백 - 임은숙 하루하루가 거기서 거기다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내 아침의 풍경은 고스란히 간직했다 자정에 바치는 제물 어제라는 이름표를 달고 기억 밖으로 밀려가는 허무 내지는 실소失笑 울컥 뜨거운 것을 토해내고 싶은 충동 멀리 굽이를 도는 자정의 아쉬움 2024. 2. 24.
[시] 2월은 새벽이다 2월은 새벽이다 - 임은숙 지독한 아픔을 겪어본 사람은 2월을 안다 텅 빈 마음의 방에 조용히 스며드는 한 줄기 빛은 봄의 부름이다 눈을 감고 있으면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고 꽃의 향기가 전해진다 무거운 것 어두운 것 모두 떨쳐버리고 가벼운 것 눈부신 것만 내 안에 채울 준비가 되어있는 2월은 금세 가버리는 어둑어둑한 새벽이다 2024. 2. 23.
[시] 입춘立春 입춘立春 - 임은숙 푸른 하늘 아래 초록바람 스치는데 대지는 아직 하얀 빛깔 거두지 않았다 가벼워지는 옷차림과 감출 수 없는 화사한 미소들 마음 마음에서 한없이 솟구치는 설렘을 주체하지 못하는 2월 그리고 입춘立春이다 볼품없이 굳어있던 강변에 폭신폭신한 흙의 기운 누가 뭐래도 이제 봄인가보다 2024. 2. 22.
[시] 꽃인 체 푸른 계절에 서서 꽃인 체 푸른 계절에 서서 - 임은숙 슬픈 겨울이 가고 있습니다 켜켜이 쌓인 눈 위에 두텁게 얼어붙은 아픔 아픔이 녹아 녹아서 어딘가로 흘러가면 좋으련만 커피를 마주하는 그 짧은 시간마저도 통째로 앗아가는 지독한 통증은 도저히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바람 없는 날 눈부신 햇살 아래 거짓말처럼 터뜨리는 꽃잎의 몸짓을 보고도 꽃처럼 웃을 수 없다면 녹지 않는 눈이 내 안에 가득 쌓였기 때문이겠지요 꽃인 체 푸른 계절에 서서 모서리 둥근 바람 뒤에 숨어 하얗게 한숨을 내쉬는 아픈 봄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2024. 2. 21.
[시] 바람 부는 날의 카페 바람 부는 날의 카페 - 임은숙 해질녘 노을 통째로 밀려듭니다 넓은 유리창 온통 붉은 빛입니다 멀리 백양나무숲에서 바람이 일고 몇 마리 새가 날아오르는데 들리지 않는 바람소리와 새들의 아우성이 환청처럼 귓가에 맴돕니다 커피 한 잔이 고스란히 식을 때까지 어둠이 내린 창에 내 옆모습이 뚜렷이 그려질 때까지 나무 정수리를 밟는 하얀 달의 걸음소리 자장가로 흐를 때까지 세상과 철저히 차단된 자정의 짙은 고요 속에서도 달달한 모카 향과 백양나무숲의 바람소리와 새들의 북적임이 함께였습니다 2024. 2. 20.
[시] 내 생에 봄 내 생에 봄 - 임은숙 일어서는 것들 흐르는 것들 흔들리는 것들 사면팔방 온통 봄의 소리다 바람인양 그 소리 사이사이를 비집고 간다 어느새 신록의 계절 꽃밭에 서면 꽃이 될까 바람 앞에 서면 향기가 될까 작은 스침 하나에도 뚝뚝 묻어나는 설렘과 환희 내 생에 봄은 바로 지금이다 2024. 2. 19.
[시] 소나기인생 소나기인생 - 임은숙 오월 초순이지만 입하立夏가 지났으니 창을 적시는 촉촉한 저 비 봄비 아닌, 분명 여름비일 것입니다 가슴 뛰는 설렘에 잔뜩 부푼 봄비도 좋지만 이왕이면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여름 소나기에 푹 젖고 싶습니다 천천히 마르고 다 마르고서도 여린 피부에 아프게 닿는 젖었던 옷의 촉감 같은 쓰린 기억이 가끔은 필요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가늠할 수 없는 비안개 사이를 차겁게 방황하던 뜨거운 가슴이 내게도 있었음을 서녘의 노을을 마주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허연 머리칼을 날리는 낯설지 않은 모습을 떠올립니다 소나기 같은 찰나의 인생입니다 한 번 뿐인 그 순간에 올인하여 반짝 빛나고 스러지는 참인생이였으면 좋겠습니다 2024. 2. 18.
[시] 5월의 아침 5월의 아침 - 임은숙 낮은 지붕 위로 넘어오는 5월의 바람이 푸른 달력에 향기를 더해준다 꽃이 피어 봄인 줄 알았는데 익어가는 이파리 어느새 유월을 향하고 있다 여러 꽃들의 숨바꼭질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나날들 아직은 봄이라고 어제까지 고집하던 연분홍 꽃잎이 여름인가 여름이네 속삭이다 크게 외치는 순간 나뭇잎사이 찬란히 부서지는 햇살에 사방(四方)이 금빛으로 물들어 눈이 부시다 2024. 2. 17.
[시] 봄에 한 약속 봄에 한 약속 - 임은숙 생기를 잃어가는 꽃잎을 입에 물고 내년에 다시 만나자 진달래와 한 약속 꽃샘바람에 사무치다 다정한 향기 코끝에 닿을까 말까 봄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아니, 아마도 겨울 안에 봄이 숨어있었나 보다 가버린 척 숨 죽이고 있다가 보드라운 바람 속으로 눈부신 햇살이 키재기를 하는 아침 약속의 꽃잎을 활짝 피우리라 찬란한 그 모습에 내 눈이 감기고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향기로우리 2024. 2. 16.
[시] 세월이 녹는 소리 세월이 녹는 소리 - 임은숙 열아홉에 귀 아프게 듣던 잔소리 마흔아홉에 입 아프게 한다 열아홉에 눈부시던 봄날이 마흔아홉에는 이토록 눈물겹다 열아홉 가을엔 단풍만 보이더니 마흔아홉 가을엔 낙엽만 보인다 푸른 시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 선명하게 안겨오는 것은 아마 세월 탓이리라 나이 탓 아닌 세월 탓이리라 첫눈이 하얗게 퍼붓는 밤 세월이 녹는 소리 크게 들렸다 2024. 2. 15.
[시] 5월이 가네 5월이 가네 - 임은숙 아주 잠깐이라는 5월이 나에게는 길고 길었네 피는가 싶더니 어느새 골목 가득 처량한 꽃잎들 꽃잎의 그 아픔 모두 내 것이 되었네 봄비에 젖는 모든 것 아름답지만은 않듯이 바람에 스치는 모든 것 설레지만은 않듯이 온 지도 이슥한 5월이 결코 지겹지만은 않네 먼 아쉬움 같은 향기 곳곳에 뿌려두고 몸만 살짝 5월이 가네 2024.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