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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숙807

[시] 내일은 없다 내일은 없다 - 임은숙 십년을 살아본 사람은 있어도 이십년, 삼십년, 사오십년 살아본 사람은 있어도 내일을 살아본 사람은 없다 내일 앞에서는 그 누구나 초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분명 어제의 내일이건만 오늘이라 한다 내일에 기대지 말자 어제도 내일도 아닌 우리에게는 오늘뿐이다 일단 뛰고 보는 것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오늘뿐이다 2024. 2. 15.
[시] 밤의 예찬 밤의 예찬 - 임은숙 태양빛으로 눈부신 한낮의 아름다움은 없지만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펼쳐놓는 고요의 적나라함이 있습니다 모종(某種)의 신비로 사색의 폭을 무한히 넓혀줍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향기 자체를 잊고 지내는 한낮의 바람보다 은은함으로 말을 걸어오는 여유로운 밤바람이 좋습니다 시각마다 힘이 들어가는 눈 끝의 고단함이 없습니다 가장 편한 자세로 모든 걸 내려놓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함 이뤄질 수 없더라도 내일의 꿈을 마음껏 그리며 설렘으로 뒤척일 수 있는 자유의 밤이 좋습니다 2024. 2. 14.
[시] 천사 다녀갔습니다 천사 다녀갔습니다 ​ - 임은숙 ​ ​ 작은 어깨너머로 늘 상서로운 빛이 감돌았습니다 ​ 무한의 높이에서 굽어보는 따뜻한 눈빛 대지에 뿌리 내린 한 그루 드팀없는 나무였습니다 ​ 비 오는 날엔 빗줄기를 막아주고 바람 부는 날엔 솜 같은 이파리들로 포근히 감싸주는 날개를 감춘 천사였습니다 ​ 아낌없이 내어주고 나눠주는 순하고 착한 날개 볼품 없이 망가져 찬바람 앞에 허연 뼈를 드러내는데 ​ 가냘픈 어깨 위에 서서히 펼쳐지는 거대한 날개 눈이 부시어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 천사가 머물던 자리에 한 겨울 햇살 한 줌 찬란합니다 2024. 2. 14.
[시] 인연의 법칙 인연의 법칙 - 임은숙 내게로 오는 사람 내게서 가는 사람 오고 가는 계절은 섭리라도 있지마는 사람과 사람 사이 인연에는 딱히 정해진 법칙이 없다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피할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가고 나면 다시 오지 않는 설사 온다 하여도 더 이상 가슴 뛰는 시작이 아닌 인연이란 멀어진 뒤에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놓치고 나서 후회하는 무거운 아쉬움이다 2024. 2. 14.
[시] 황혼을 걷다 황혼을 걷다 ​ - 임은숙 ​ ​ 저무는 강 위에 그림자 길게 드리우고 낮달이 희미하게 웃고 있다 ​ 도시의 혼탁함에 맑은 아침을 잊고 살았던 잿빛의 나날들 ​ 길게 기지개를 켜자 ​ 아침을 위한 준비는 자정과 새벽만의 것이 아니다 ​ 황혼의 고요를 거치지 않고서 어찌 자정의 무게와 새벽의 설렘이 있으랴 ​ 어제와는 사뭇 다른 서녘의 아름다움에 전율하며 붉은 황혼을 걷는다 2024. 2. 13.
[시] 날다 날다 - 임은숙 신은 공평합니다 새에게는 한 쌍의 반짝이는 날개를 주고 인간에게는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꿈의 날개를 주었습니다 ​ 새는 하늘을 날지만 우리는 꿈을 향해 납니다 ​ 새들끼리는 서로의 날개가 어떤 모양이고 무슨 색깔인지 한눈에 볼 수 있지만 날개를 숨기고 있는 우리는 서로의 꿈이 무엇이고 얼마나 큰지 마음을 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 빌릴 수도 빌려줄 수도 없는 남의 날개로는 대신할 수 없는 꿈으로의 비상 모든 추락의 원인은 비상입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엎드리면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기에 빙산이 앞을 막아도 뚫어야만 합니다 ​ 언젠가는 봄이 오고 시간 앞에서 모든 것은 키를 낮추게 된다는 진리 날개를 가진 자들의 희망입니다 2024. 2. 12.
[시] 봄이라서, 봄이기에 봄이라서, 봄이기에 - 임은숙 스치는 바람 붓에 초록 물감 듬뿍 묻혀 휘갈긴 봄의 詩 현란하다 소리 없이 부서지는 고요 코끝에 머무는 짙은 향기 봄이라서 봄이기에 마음껏 슬퍼해도 좋다 그 슬픔마저 꽃으로 필거니까 봄이라서 봄이기에 마음껏 설레도 좋다 그 설렘마저 향기로 남을 거니까 창가에 내려앉는 햇살에 눈이 부신 4월은 무가내로 매달리는 그리움으로 흩어지는 생각 줏기에 여념이 없다 2024. 2. 11.
[시] 원점에서 원점에서 ​ - 임은숙 ​ ​ 쓰다 버린 詩들이 나의 삶처럼 초라하다 ​ 설렘으로 시작한 아침들은 습관처럼 도시의 어둠 속에 잠겨버리고 ​ 나의 길에 대해 얘기해주는 이 없고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이 없다 ​ 옛 꿈은 나와의 거리를 한사코 좁히지 않는데 날이면 날마다 다른 아침을 기다리며 출발할 수 없는 길 위를 맴돈다 ​ 짙은 고요 時針의 길을 따라 흐르는데 무의미한 제자리걸음 언제까지 이어질까 2024. 2. 10.
[시] 11월에는 약속을 하지 말자 11월에는 약속을 하지 말자 - 임은숙 11월에는 굳이 약속을 하지 말자 바람 찬 날 낙엽 위를 걷다 손 녹이러 들어선 길옆 찻집에서 문득 떠오른 이에게 안부를 전하자 맑은 茶 한 잔에 마음마저 녹아드는데 때 맞춰 날리는 첫눈이 축복처럼 유리창에 매달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온 볼이 발간 이의 모습은 눈송이 같은 설렘이더라 가는 계절의 아쉬움을 애써 기억하지 말자 짧은 11월에는 그리운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자 2024. 2. 9.
[시] 깨우지 마세요 깨우지 마세요 ​ - 임은숙 ​ ​ 먼 들녘 어딘가에서 가만히 날 부르는 소리 스치는 바람에 끊어졌다 이어졌다 합니다 ​ 꽃이 남긴 향기 어둠처럼 들판을 덮고 가는데 차가운 빗방울에 어지럽게 흩어지는 지난 사연들 ​ 애써 외면하는 눈망울에 매달리는 뜨거운 것은 아마 미련이겠지요 ​ 그대 있어 풍성했던 나의 가을은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짙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 찬비 속을 방황하는 나를 닮은 이여 서둘지 말아요 아직은 그대로 두어요 ​ 엄동의 추위 달래줄 그 뜨겁고 아픈 기억을 아직은 깨우지 마세요 2024. 2. 8.
[시] 겨울안부 겨울안부 ​ - 임은숙 ​ ​ 별과 꽃과 새와 나무 바람이 들려주던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들과 자유의 푸른 날갯짓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 그대의 잔잔한 미소와 아무 생각 없이도 쉬이 잠들 수 있었던 수많은 밤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 길모퉁이마다 곱게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계절노트에 또박또박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순간순간 나누었던 얘기와 마주잡은 두 손의 떨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 잊지 않았습니다 놓지 않았습니다 아직 내 안에 있는 그대입니다 ​ 거울 속에 낯선 표정과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그대가 두고 간 그리움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키를 늘려왔나 봅니다 ​ 멀지만 무척이나 가까이 있는 그대 ​ 서리꽃이 하얗게 피어난 겨울아침 창가에서 깊이 우러난 마음茶 한 잔으로 안부 .. 2024. 2. 7.
[시] 중년의 길 중년의 길 - 임은숙 세상 살면서 처음 아닌 길이 없겠지만 하나씩 나이를 더할수록 서툴고 두려운 길입니다 정열 하나로 무작정 앞을 향하던 청춘의 길과는 사뭇 다른 조심스럽고 불안한 길입니다 무가내로 달려드는 한여름 밤의 풀벌레 같은 이제 추억이라 불리는 끈적끈적한 기억들도 있고 포근한 잠자리보다 반가운 친구 같은 아침도 있습니다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보다는 그 어떤 구속이 그립기도 한 새벽부터 황혼녘까지 해걸음을 세는 외롭고 추운 길입니다 2024. 2. 6.